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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아톰 Oct 20. 2021

눈이 이긴 마음

2021년 1월 6일, 첫 번째

2021년 1월 6일 겨울의 한가운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저녁 6시 무렵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섯 시 반 무렵, 여의도에 위치한 김밥집에서 음식을 픽업해 나왔을 땐 이미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눈은 배달러에겐 정말 위험하다. 네 발 달린 자동차도 눈길은 위험한데 이륜차는 오죽할까.



다행히 퇴근길 차량 이동이 많은 지역이라 아스팔트 위에 아직 눈이 쌓이고 있진 않았다. 어쨌든 음식을 픽업했으니 이것만은 배달해야 한다. 그렇게 언제든 두 발을 내려 멈출 준비를 한 채, 정말 천천히 운전해 배달지인 신길 쪽을 향했다. 넘어지지만 말자는 생각으로 여의도에서 샛강역을 지나 대방 지하차도를 지났을 때 이미 세상은 함박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신길로 가기 위해 여의대방로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깨달았다. 오토바이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



오토바이를 한적한 곳에 세워두고 담당 매니저에게 연락했다. 매니저는 더 이상 배달은 불가하다는 판단하에 주문을 막아놓은 상태였고, 지금 갖고 있는 음식만 도보로 배달할 수 있겠냐 물었다. 배달지까지 1.5km 남짓만 남아 있었기에 흔쾌히 걸음을 보채며 배달을 마치기로 했다. 근데 내 업에 있어 눈은 쓰레기고 이 상황은 재앙이나 다름없는데, 도대체 오늘따라 눈 내리는 세상이 왜 이리 이뻐 보일까.

'내 의지력과는 상관없이 예정보다 일찍 일을 마치게 된 뜻밖의 여유 때문인가.'

'나만 죽기는 싫어도 세계 멸망은 내심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심정이려나.'

'이럴 바에 합의하에 다 같이 조금씩만 덜 열심히 살지.'

 꼬리를 물고 미소를 머금은 생각과 함께 방한화를 신고, 싱싱한 눈 쌓인 길을 저벅저벅 걷던 그날, 그 골목의 공기와 냄새, 분위기를 여태 잊지 못하고 있다.



너무 늦지 않게 배달을 마치고 다시 오토바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배달통에 헬멧과 장비들을 넣어두고, 집에 가는 대중교통을 알아보니 다행히 근처에 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프랜차이즈 피자집 배달원이 언덕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눈길에 바퀴가 구르지 않아 혼자 오토바이를 끌고 언덕길을 오르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남 같지 않은 마음에 조용히 뒤로 다가가 같이 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더 이상 못 갈 것 같으니 언덕 위 안전한 곳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걸어가시는 게 어떻겠냐 물었다.

그랬더니 그 배달원이 말한다. 사실 출발 전에 이미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도저히 못 갈 것 같아 사장님께 말했더니, 그럼 주문받은 건 어떻게 하냐고, 일하러 왔으면 일을 하라 했단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와본 세상이 생각보다도 더 지독해서 이 피자 배달만 마무리하고 가게로 걸어 돌아갈 것이라고, 또 나와야 한다면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나 눈물 나게 예쁜 눈이 쓰레기가 되는 것은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하얀 눈을 덮고도 남을 내 속에 까만 마음이 그동안 눈을 쓰레기로 만들었구나. 그런데 오늘만은 눈한테 여지없이 져버려서 세상이 이렇게도 아름다웠구나. 울컥 쏟아져 나온 동심에 그가 지지 않기를, 부디 자신을 탓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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