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6일, 두 번째
피자 배달원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5분 뒤에 온다던 버스가 20분째 오지 않는다. 이 정도 눈에는 사륜차도 별 수 없구나 싶어 발길을 돌려 대방역으로 간다. 지하철을 타고 철산역으로 가면서 인터넷 기사를 살펴본다. 실시간으로 이런 기사가 올라온다.
오늘 눈의 낭만한테 뻗은 게 나만 아니구나, 저 정도의 애사심과 열정도 별 수 없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있어야 할 자리가 뒤틀리니 서로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알아본다. 다 똑같은 사람이다. 그래 봐야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철산역에 내려 광명시청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여기 언덕이 꽤나 가파르다. 차도에서 미처 겨울용 타이어로 교체하지 못한 후륜차들의 바퀴가 헛돌아 언덕을 전혀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길은 꽉꽉 막혀 있다. 한 여성분은 이미 동승자의 차를 뒤에서 밀고 있었지만 역부족으로 보였다.
‘뒤에서 또 밀어줘야 하나? 한 두대도 아니고 차는 계속 올 텐데. 이거 다 밀어주다간 오늘 얻은 내 자유시간 다 사라질 건데.’ 이런저런 잠깐의 고민을 뒤로하고 인도 펜스를 훌쩍 넘어 차를 밀기 시작했다. 낭만에 속절없이 뻗은 날이라 어쩔 수 없었다.
조금 밀고 있으니 내 또래 남자 한 분이 더 붙는다. 5분쯤을 함께 밀었더니 드디어 언덕 위로 차가 올라섰다. 운전자가 운전석에서 내려 감사하다며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서니 여전히 못 올라가고 있는 차가 많다. 우선 제일 급해 보이는 택배 차량을 민다. 같이 붙은 남자 분도 나처럼 낯을 가리는지 서로 쑥스러움에 말은 걸지 않았지만, 무언의 눈빛으로 차를 정하고 함께 밀었다. 그런데 이 날씨에도 택배라니…… 대한민국 물류 시스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렇게 한대, 두 대 언덕으로 올려주며 요령도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 아저씨는 염화칼슘을 이곳저곳 뿌리고 있고, 광명시청에서 나온 공무원으로 보이는 두 분은 눈을 치우고 있다. 그런데도 내리는 눈에 인간 몇 명으론 턱없이 부족했고, 이대로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슬쩍 혼자 빠지기엔 눈치가 보인다. 군대가 힘든 이유는 자연과 싸우려고 해서라던 선임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다행히 1시간 정도가 더 지나자 눈이 잦아들고 차들도 제법 잘 다니기 시작했다.
다시 집으로 향한다. 겉은 눈에 젖고 속은 땀에 젖어, 눈 내리는 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따로 없다. 더불어 마음은 감상에 젖었다. 같은 날 두 편의 글이 나온 이유다. 집에 돌아와 허물을 벗어던지고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인다. 밥 생각은 전혀 나지 않고, 침대에 흐느적흐느적 기어들어가 이불을 덮으니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