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음식의 이상형 월드컵이 있다면 '족발'은 영원한 우승 후보군에 오를 것 같은 메뉴입니다.
서울 '3대 족발'하면 떠오르는 강북의 성수 족발과 강남의 양재 족발, 그리고 족발의 원조라는 장충동의 평안도 족발까지, 전국 각 지역마다 유명한 족발집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우리 동네에 위치한 족발집으로 서울 3대 족발집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나름 지역구에서는 맛집으로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요즘 맛집 프로그램의 기준은 맛도 맛이지만 뚝심 있게 오랫동안 점포를 오래 운영한 노포들에게 높은 점수가 돌아가는 듯합니다. 새로 생긴 점포들도 노포 못지않은 맛을 자랑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젊은 분위기의 음식점도 생기 있어 좋긴 하지만, 연륜이 있는 의사 선생님이 믿음이 가듯 음식 경험 많은 주방장의 아우라가 풍기는 곳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듯합니다.
일단 가게에 들어설 때 일하시는 분들의 에너지가 만만치 않은 점포들이 있는데, 흰머리가 살짝 보이는 주방장의 칼끝을 바라보는 매서운 눈매와 현란한 손기술 등이 에너지로 변환되어 점포 안을 가득 채웁니다.
동네에 새로 생긴 족발집이 그러한 가게들 중 하나인데, 그곳에 들어서면 주방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내공의 압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부분 동네마다 이런 집들을 있는데, 유명한 노포가 되어 가길 바라며 아끼고 응원하는 마음입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나라들에는 족발요리가 대부분이 존재합니다. 중국은 '주지아오(저각, 猪脚)'이라 불리며 대중적인 요리로 인기를 누립니다. 돼지의 큰 체구를 지탱하는 조그마한 발은 강인함을 상징하여, 족발은 중국에서 무병장수를 의미하는 국수와 함께 생일상에 올라가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특히 산동지역의 오향족발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데, 오향장육에 들어가는 5가지 향신료 팔각(스타 아니스)과 정향(클로브), 회향(펜넬), 화자우(초피)라고 불리는 중국 후추와 진피(말린 귤껍질)의 향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중국스러운 향과 맛을 자랑합니다. 중국의 커리분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향분은 중국 음식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족발을 사용한 요리를 일본에서는 '돈소쿠(豚足, とんそく)'라고 합니다.
원래 일본에서 족발을 먹는 곳은 오키나와를 비롯한 남쪽 섬지방으로 족발을 삶아서 국을 끓여서 먹기도 하고 우리나라처럼 양념을 해서 먹기도 합니다. 오키나와에서는 돈소쿠가 아닌 ‘테비치(돼지발이라는 뜻입니다)’라고 하며 대표 음식 중에 테비치 소바(てびちそば)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족발, ‘돈소쿠’가 일본 전국으로 확대되어 일본 슈퍼마켓에서도 삶은 족발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동남아에서도 족발은 서민음식으로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모두 대중적인 메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태국 요리 '카오 카무(ข้าวขาหมู)'는 돼지의 다리를 이용한 요리로 밥을 뜻하는 '카오'와 족발을 뜻하는 '카무' 즉 족발 덮밥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생소하지만, 태국에서 카오 카무는 아주 흔한 먹거리 중 하나입니다.
또한 필리핀의 족발 튀김인 '크리스피 파타(cripy pata)'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로서 필리핀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메뉴이기도 합니다. 튀긴 족발의 부서질듯한 아주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이 일품인 '크리스피 파타'는 간장소스를 찍어 밥과 곁들여 먹는 우리 입맛에도 아주 잘 맞는 족발 요리입니다.
크리스피 파타는 개인적으로 족발 요리 중 가장 애정하는 요리입니다.
유럽에서는 돼지의 다리를 통째로 햄을 만드는 스페인 하몽과 이탈리아의 프로슈토가 유명합니다. 특히, 돼지를 사랑하는 나라 스페인에서 '마니타스 데 세르도 Manitas de cerdo (en salsa de tomate)'라고 하는 족발 요리는 족발을 토마토소스에 뭉근하게 끓인 유럽 스타일의 스튜(Stew)를 연상시킵니다.
독일의 경우는 우리가 아는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와 '아이스바인(Eisbein)'이라 불리는 독일식 '족발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삶아서 먹는 우리나라 족발과는 달리 오븐에서 구운 껍질이 바삭한 족발로 독일에 가면 소시지와 함께 꼭 먹어야 하는 독일의 대표 음식입니다.
슈바인스학세는 근대 이전의 독일의 전형적인 농민 음식으로 부드러운 삶은 감자, 짭짤하고 시큼한 사우어크라우트로 불리는 양배추 김치와 함께 먹습니다. 여기에 맥주를 반주로 하면 가장 독일적인 음식이 되는데, 바삭한 껍질과 속살, 감자의 하모니가 입안에서 브람스의 교향곡처럼 조화롭게 울립니다. 이를 맛보고 있노라면 독일 음식이 맛없다는 편견이 날아가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동유럽에는 오스트리아의 슈텔체(Stelze), 체코의 꼴레뇨(Koleno) 그리고. 아일랜드 요리에도 크루빈스(Crubeens)라는 비슷한 음식이 있습니다.
가끔 슈바인스 '학세'로 발음하느냐 혹은 '학센'으로 발음하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독일에서는 학세(haxe)와 학센(haxen)을 혼용해서 쓰인다고 하니 둘 다 맞는 발음이므로 싸우지 마시길.
음식의 '오지(奧地)'라고 불리는 북유럽에서도 족발은 전통 있는 음식으로 노르웨이에서는 실테렙(Syltelabb)이라고 불리며 크리스마스 시즌에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기도 합니다. Sylte라고 하는 소금으로 보존하다라는 단어와 Labb라는 족발의 합성어로 소금에 절인 돼지 족발을 삶아서 크리스마스 시즌 음식으로 소비합니다.
실테렙은 매우 짜기 때문에 아쿠아비트(aquavit, 펜넬과 딜 등의 향신료가 함유된 술)라고 불리는 스칸디나비아식 증류주, 빵과 겨자와 함께 먹습니다.
이첨럼 족발을 이용하는 식재료 문화는 동서양의 공통점으로 'Pig's trotters'(족발)는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세계인의 소울푸드입니다.
족발을 조리하는 방식을 보면 각 나라별 요리 문화를 알 수 있는데, 동아시아에서는 찜으로, 유럽에서는 구이를 선호하며, 동남아시아에서는 튀김으로 조리하는 세계 각 지역별 조리 특성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경우 부뚜막과 가마솥에서 물에 삶는 방식인 '브레이징'(Braising)으로 조리하여 족발을 먹습니다. 예로 우리나라의 '찜'이 가장 대표적인 브레이징 방법입니다. 재료의 덩어리가 크고, 육질이 질긴 부위나 지방이 적게 함유된 고기를 조리하는 방법으로 수분이 많이 함유되어 육질이 부드럽고 뼈에 붙은 고기가 분리가 잘되도록 조리되는 방법입니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오븐이 잘 발달한 유럽의 주방 문화에서는 족발을 물에 삶은 후, 오븐에 구워 먹는 로스팅(Roasting) 방식으로 족발을 구워 껍질을 바삭하게 먹는 방식을 취합니다. 유럽과 구미 음식의 특성인 겉은 바삭하고 속살은 수분을 머금는 미각적 선호도(crispy on the outside, soft on the inside)에 맞게 조리합니다.
한편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지역은 더운 날씨로 인하여 튀김 음식이 선호도가 높아 족발 역시 물에 삶아, 다시 한번 높은 온도의 기름에서 딥 프라잉(Deep frying) 방식인 족발 튀김을 먹습니다. 튀김이란 타이어를 튀겨도 맛있다는 말처럼, 삶기만 해도 맛있는 족발을 고온으로 튀겨내니 족발 껍질이 바삭한 맛이 일품인 요리가 됩니다.
우리나라 족발의 역사는 족발이나 우족을 이용한 족탕 혹은 주저탕(족 복기, 족조림)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924년 이용기가 지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오는 족탕은 현재의 우족탕과 그 모습이 비슷한데, 삶은 족발을 사태와 같이 넣고 물을 많이 부어 끓인 뒤 장과 후추, 계피를 넣어 한소끔 다시 끓여 탕으로 먹었다고 합니다.
현대의 우리가 먹는 족발의 원조는 장충동 족발 거리에서 시작됩니다. 1963년 장충 체육관의 개장과 함께 장충동은 유동인구의 집결지로 다시 태어납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인기를 휩쓸었던 권투경기와 레슬링 경기 등이 치러 지던곳, 우리나라 정치의 정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정치인의 성지였던 장충체육관은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먹거리도 필요한 법, 유명 제과점 태극당이 새로 지어지고, 한식당들과 중식당들이 장충동에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비싼 식당들보다는 서민들이 먹을만한 음식이 필요로 하자 좌판에서 족발이 팔리기 시작합니다. 장충동에서 가까운 당시 국내 최대의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서는 양돈 부산물인 족발이 넘쳐나고, 그때까지 먹을거리로 생각지 않았던 족발이 평안도 할머니들 손에서 간장 족발로 다시 태어납니다.
처음에는 이북에서 내려온 두 할머니가 만두와 빈대떡을 팔다가 고향에서 맛있게 먹었던 족발을 가판대에서 팔기 시작합니다. 장충체육관에 레슬링이나 권투경기가 있는 날 이 새로운 족발 메뉴가 소문이 나기 시작해 할머니들의 족발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게 됩니다. 이후 두 할머니들은 각자 가게를 차립니다. 하나는 장충동 뚱뚱이 할머니 족발의 전숙렬 할머니이고 친구분의 족발집은 평안도 족발집으로 상호를 정합니다. 지금도 장충동 족발집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장충동 뚱뚱이 할머니 족발과 평안도 족발집의 탄생 과정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족발시장의 태동입니다. 이후, 장충동에는 족발집들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장충동은 우리나라 족발 시장의 메카로 성장합니다.
장충체육관이라는 새로운 핫플레이스의 출현, 육류 부산물이던 새로운 식재료 족발, 넘치는 유동인구의 조합은 '장충동 족발거리'라는 서울의 새로운 외식시장을 형성합니다. 족발의 새로운 맛은 입소문으로 퍼져나가면서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됩니다. 요즘 장충동을 가보면 예전만큼의 족발의 열기는 없지만 아직도 족발의 성지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저녁으로 배달시킨 족발을 접시에 담아내고, 시원한 소주 한잔 준비합니다.
쫀득쫀득한 껍질과 담백한 속살, 따뜻하게 퍼지는 포만감까지, 소주 한잔 더하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먹거리라고 생각 듭니다. 여기에 매콤한 막국수 한 젓가락이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듯합니다.
족발 먹는 밤은 축복받은 밤처럼 풍요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