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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Oct 08. 2018

홍차와 애프터 눈 티

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커피도 좋아하지만 쌀쌀한 계절이 돌아오면 커피보다는 홍차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커피와 홍차 중 어떤 것을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블랙 핑크와 레드벨벳 중 누굴 더 좋아하느냐?' 만큼 어려운 질문으로  두 향과 맛, 개성의 다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홍자에 레몬 한쪽, 그리고 브랜디나 위스키 한 숟가락 더해주면 잘 볶고 잘 내린 커피만큼으로 매력 있습니다. 특히나 예쁘고 개성 있는 찻잔들은 그 매력을 한층 더 올려 줍니다.

달달하게 설탕 한 숟가락 넣고 티스푼을 원형으로 저어가며 달그락 티스푼이 찻잔과 부딪히는 소리도 좋습니다.

어릴 적, 겨울이면 대청마루에 스미는 매서운 한기에 늘 석유난로를 켜 놓고 살았습니다. 석유난로 위에는 할머니가 끓이는 생강차 주전자에서 항상 생강향이 퍼지곤했습니다. 겨울철 학교를 다녀오면 할머니가 따끈한 생강차에 설탕 한 숟가락을 타 주시던 그 향과 소리가 그립습니다.  



Van Aken, An English Tea Party, 1730


중국의 차(茶)를 접한 최초의 유럽인은 중국과 무역항로를 처음으로 개척한 포르투갈인이었습니다. 중국차는 곧 프랑스와 독일, 영국의 부유층까지 유행하기에 이릅니다. 영국에 중국 차가 전해진 유래는 1662년 포르투갈 공주 캐더린이 영국 찰스 2세에게 시집을 가면서 소개 됩니다. 그렇게 전해진 차는 영국에서 애프터 눈 티(afternoon tea)라는  차문화의 꽃을 피웁니다.

커피가 득세하던 시절, 홍차는 영국 귀족 주부들 사이에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중국에서 수입된  청화백자와 홍차 잔, 티스푼 등 아기자기하고 보석 같은 도자기들과 시누아즈리(Chinoiserie)와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새로운 유행과 함께 이국적인 차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시누아즈리라는 중국 도자기의 유입은 도자기 불모지의 유럽에 도자 시장을 만들어내고, 자포니즘은 우끼요에(浮世繪부세회, 덧없는 세상 속세를 뜻한다.)로 대표되는 일본 문화로 반 고흐와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홍차가 유럽에 끼친 큰 영향을 손꼽아 보면 홍차를 빨리 수입하기 위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범선인 Clipper(돋이 많은 범선)를 만들어 진것, 또 이 클리퍼들은 다양한 해양 무역로를 개척하며 해상무역의 발전을 이끈점을 들 수 있습니다.


홍차는 음료로서의 기능뿐만이 아닌 동양의 신비로움을 전했을 뿐 아니라,  중국식 도자 문화와 일본의 정원 문화 등 당시로서는 유럽인들에게는 생소하고 고급문화로 여겼던 아시아의 문화를 유럽 귀족문화로 침투 시키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이렇듯 '차 문화'는 새로운 영국식 차문화를 만들어 내고 여성들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요즘 방탄소년단이 유럽의 소녀팬들을 만들어 내듯이 말입니다.



독일 마이센(Meissen)사의 수작업 장면과 회사로고

홍차 문화는 유럽의 도자 공예를 진일보시킵니다. 중국 도자기를 수입만 하던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유럽의 세련 되고 단단한 도자기들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독일의 드레스덴의 작은 마을인 마이센(Meissen)에서 1709년 유럽 최초로 14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내는 Hard paste 도자기를 생산합니다.

이후, 마이센을 비롯한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과 영국의 웨지우드(wedgwood)등이 뒤를 이어 유럽식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유럽의 도자기들은 동양으로부터의 단편적 카피에 그쳤던 것을 뛰어넘어 도자 문화에 유럽의 색을 입히기 시작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 풍한 화려한 장식을 더하여 중국과 일본의 자기를 넘어서는 세계적 명품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독일의 마이센(Meissen),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과 영국의 웨지우드(wedgwood)는 현대에도 세계 3대 도자기 회사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마이센은 '0'이라는 숫자가 하나 더 잘못 기재되었나 할 정도로 가격이 높습니다. 마이센의 도자기들은 흙으로 만든 흰색 황금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뛰어난 세공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달한 유럽의 도자 문화는 영국의 상류사회 여성들에게 화려한 도자기들과 애프터 눈 티로 불리는 간단한 식사, 그리고 사교문화를 만들어 내는 홍차의 마법에 빠지게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현대와 같이 높지 않았지만, 티타임을 통해 교류를 넓혀 나갔고 이로인해 여성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차를 준비하는 것은 가정에서 '양육자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티 타임을 준비하는 것은 하인들에게도 위임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커피하우스는 영국에서 '남성들의 대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남성들의 영역이었지만, 집안에서는 애프터 눈 티 타임이 상류사회 여성들의 우아함을 상징하는 여성들의 영역으로 티팟을 쥔 주인장의 손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도 작용했습니다.



An illustration from a book published in 1851 depicts the cultivation of tea in China


차는 일반적으로 녹차와 우롱차, 홍차와 보이차 등  발효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합니다. 이중 세 번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홍차입니다.


1.  녹차 : 발효시키지 않고 찻잎을 수확하여 살짝 쪄서 열처리하여 발효 작용을 하는 효소를 억제하여 건조하여 만듭니다.

2. 우롱차 : 녹차와 홍자의 중간 성격을 지닌 차로 발효 도중 찻잎을 쪄서 발효를 중지하여 푸르름이 남아 있어 청차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찻잎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녹차의 떫은맛이 제거되어 마시기가 수월합니다.

3. 홍차 : 홍차는 완전 발효차로 녹차처럼 찻잎의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발효과정에서 얻은 특유의 향미 성분으로 부드럽고 향이 좋으며, 깊은 갈색을 가집니다. 아시아에서는 찻잎을 우려낸 후 색이 빨간색이라 '홍차'라 부르고, 유럽인들은 찻잎이 검은색이라 홍차를 'Black tea'라고 부릅니다.

4. 보이차 : 찻잎을 수확하여 찻잎을 뭉쳐서 숙성과정을 거친 후 마시는 후발효 차로 숙성기간과 숙성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됩니다. 중국의 북서부 '차마고도'로 불리는  윈난성에서 티베트에 이르는 지역에서 마시는 차를 지칭하며 현재에는 윈난성에서 생산되는 차만을 보이차라고 부릅니다.



17세기 후반, 중국에서만 생산되어 유럽으로 수출되는 홍차는 상류사회만이 소비하는 사치품이었습니다. 18세기에 들어 홍차의 인기는 서민들에게도 이어지고, 영국 식문화의 단조로움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영국의 습하고 추운 날씨에 따뜻함을 더해주었습니다. 수질이 좋지 않아 늘 배탈이 나던 영국인들에게 물을 끓여 마시는 홍차는 건강한 삶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영국의 일반가정에서는 홍차를 구매하는 비율이 총급여의 5%에 해당할 정도였습니다.

이제 영국인들에게 홍차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그들의 문화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만 차(茶)를 독점 수입하게 되자 영국은 연간 2만 8천 톤의 은을 중국의 차를 수입하는 데 사용합니다. 영국은 중국에 인도에서 생산되는 면화를 팔아 이익을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개항이 된 지역들은 주로 습하고 더운 남쪽의 기후로, 면은 공짜로 줘도 안 입는 덥고 성가신 옷이었던 까닭에 구매욕이 맞지 않는 면화수출은 실패하고 맙니다.

무역적자가 계속되자 영국은 중국인들에게 팔아서는 안 되는 아편을 팔기 시작하고, 무역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는 '아편 전쟁'을 일으킵니다.


1차 아편전쟁 이후, 영국 동인도 회사는 새로운 계획을 세웁니다. 홍차를 식민지 인도에서 생산하여 판매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홍차를 만드는 기술을 1급 기밀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인 로버트 포츈(Robert Fortune)은 동인도 회사를 위해 중국의 부유한 차상인으로 위장하여 차 생산지에 잠입, 차 생산의 비밀과 차 씨앗을 가지고 인도로 향합니다.

로버트 포츈이 밀반입해 온 차나무는 인도에서 무사히 재배에 성공하고, 그 후 인도는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홍차 생산국가로 떠오릅니다. 인도 북동부 아쌈과 다즐링 지역(위도가 같은 중국 윈난성의 서쪽 지역)에서 차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전 세계 홍차 시장의 35%의 생산량을 차지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최대 홍차 생산지 실론(Ceylon)은 스리랑카의 옛 이름으로 세계 홍차 생산량의 20%를 차지합니다. 원래  주 생산품이 커피였던 실론섬은 '커피 마름병'으로 커피 농사가 힘들어지자 홍차 생산지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차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1880 년 혁신적인 기계화 방법이 영국에서 도입됩니다. 존 워커(John Walker)는 최초로 자동화된 차 티백 기계를 발명하여, 뜨거운 물에 홍차 티백만 담그면 되는 편리한 기호음료로 변화 시킵니다. 그렇게 홍차를 영국인과 유럽의 기호품이 아닌 전 세계인의 음료로 바꾸어 놓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립톤 티(lipton tea)'도 실론 출신으로 거대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unilever)로 발전하기에 이릅니다.  

실론티는 다즐링 아쌈과 함께 홍차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홍차는 향신료와 함께 세계 식문화역사를 바꾼 중요한 식재료이자 문화의 상징입니다.



홍차는 딸기잼 듬뿍 바른 따뜻하고 버터 풍미 가득한 스콘(scone)과 먹어야 제맛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스콘도 홍차만큼 인기가 없는지라 요즘 파는 곳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신 요즘 인기 좋은 에그 타르트와 함께 합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따뜻한 우유에 홍차를 우려 마시는 밀크티를 많이 소비하지만, 따듯한 물에 홍차를 우려 레몬과 브랜디, 설탕을 넣어 드시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브랜디나 위스키를 조금 더 많이 첨가하면 따듯한 칵테일 버전의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마시는 느낌입니다.

 

'선선한 가을밤, 커피를 잊게 할 만큼 맛있는 홍차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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