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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Oct 14. 2018

굴의 계절이 돌아오다.

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부쩍 쌀쌀해진 날씨가 반갑지만은 않지 수확의 계절인 가을, 미 세포들은 이 계절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돌아와야 먹을 수 있는 감과 귤 등의 과일류는 물론이고 단맛이 오른 가을 무와 배추도 수확이 가까워집니다.  가을철에 더욱 풍성해지는 해산물인 꼬막과 홍합 등 조개류도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고, 그중 최고 으뜸인 '굴'도 출하됩니다.

마트에 올해 처음 굴이 나와 굴밥을 해먹을 요량으로 한 봉지 들고 집으로 향합니다.

굴밥과 된장국, 화이트 와인의 조합은 생각보다 환상적이라, TV 속 저녁 먹방 시간에도 밀리지 않는 가을의 입맛을 선사합니다.


드라마 심야식당과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등장한 '이중 뚜껑 밥솥'('도나베'라고 불립니다)에 굴밥을 합니다.

반시간 정도 불린 쌀을 가볍게 수돗물에서 씻어냅니다. 불린 쌀과 소금물에 씻은 생굴 그리고 다시마 한 장을 도나베에 넣고 밥물을 맞춥니다.

센 불에서 밥물이 끓어오를 때까지 가스불을 최대한 켭니다. 밥물이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줄이고 10분간 밥을 합니다. 그리고 10분이 지나면 가스불을 끄고 5분간 뜸을 들입니다.

밥을 짓기 시작하고 20분의 시간이 지나 뚜껑을 열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굴밥이 완성됩니다.

여기에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나 '소아베(Soave)' 같은 깔끔한 화이트 와인 한잔 곁들이면 웬만한 해산물 레스토랑과 횟집, 참치집 메뉴들 못지않은 만족감을 주는 최고의 저녁 밥상이 탄생합니다.


Still Life with Oysters(1641), Alexander Adriaenssen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굴은 껍질에 붙어있는 석화 상태로 초장을 발라 먹기도 하고, 굴밥과 굴국, 굴물회, 어리굴젓, 굴튀김까지 김과 함께 한국인의 식탁에서 겨울철 미각을 책임지는 중요한 해산물입니다.


굴의 인기는 유럽에서도 대단해,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지 않는 유럽인들에게 '회'로 소비되는 단 하나의 해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달력에 'R'자가 있는 달은 굴을 먹어도 되는 달 의미 합니다. 5월부터 8월까지(May, June, July, August) 달력에서 'R'자가 없는 달은 굴의 산란기간이기도 하거니와 온도가 높아 굴을 회로 먹지 않습니다.  


굴은 로마시대부터 양식되었다고 전해지며 로마 황제들이 즐긴 최고의 정력제라 믿었습니다. 사실 굴에는 아연 등의 무기질을 함유하고 남성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의 분비와 정자 생성을 촉진한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남성호르몬 생성에는 '양배추나 시금치'도 좋다고 하니 최음제와 정력제로서의 기보다미각의 요구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로마의 황제들은 바다가에서 채집하는 굴을 좋아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날이 더워지는 5월부터 8월까지는 이탈리아 연안에서 채취한 굴을 로마까지 신선하게 가져오기란 쉽지 않고,  탈이 나기 쉬워 아무리 굴을 좋아해도 먹지 않는 기간으로 정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5월에서 8월 사이는 바닷물의 수온이 올라가 굴에 비브리오균의 증식 속도가 엄청나서 조리를 안 하고 날로 섭취할 경우 식중독을 일으키게 됩니다.(역시 여름에는 웬만하면 회는 조심하던가 안 먹는 게 좋을 듯합니다.)


로마 황제뿐만 아니라 미용에 좋다는 이유로 클레오 파트라도 굴 애호가였다고 전해지고 나폴레옹은 물론, 독일의 재상인 비스마르크도 굴 마니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굴 애호가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카사노바(Giacomo Casanova)입니다. 소설 속 인물이나 구전이야기에 내려오는 인물로 생각되지만 1725년 베니스에서 태어나 1798년 사망한 베니스의 귀족으로 작가이자 외교관을 지낸 실존 인물입니다. 그의 자서전인 '나의 인생(story of my life)'에서 항상 관계 직전 굴을 50개를 먹는 이야기로도 유명합니다.


굴은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영국의 Port Navas Oyster Festival 1925

굴은 인간이 양식한 최초의 어패류로 분류되고 있으며 전복과 함께 우리나라 조개류 양식의 양대 산맥입니다. 전복은 미역과 다시마를 주식으로 하는 조개류로 일정 기간마다 해초류를 사료처럼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굴은 바닷물에 녹아있는 유기물을 이용하여 자라기 때문에 특별히 먹이를 준다거나 보살펴줄 필요가 없습니다.


굴의 양식은 바닷물에 떠다니는 굴의 씨조개(종패, 種貝)를 포집하여 조개껍질에 이식합니다. 다음으로 종패가 이식된 조개껍질을 굴이 잘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의 양식장으로 이동하여 기르게 됩니다.

굴의 양식 방법은 두 가지로, 조개껍데기를 줄에 매달아 종패를 이식하여 바닷물에 담가 놓는 '수하식 양식'과 종패를 이식하여 바닷가 바위에 붙여서 기르는 '투석식 양식'으로 나뉩니다.

수하식 양식으로 기른 것은 마트에서 보는 비닐봉지에 쌓여있는 ''고, 투석식으로 기른 것은 껍질이 있는 채로 출하되어 '석화'라 부릅니다.

수하식 굴은 우리나라 굴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통영에서 많이 양식되는 방법으로 굴이 바닷속에 하루 종일 잠겨있어 플랑크톤과 유기물의 접촉시간이 길어 알이 굵고 실합니다.

투석식 굴인 석화는 만조(滿潮) 때는 바닷물에 잠기어 있다가  간조(干潮) 때에는 바위 위에서 햇볕을 보고 자랍니다. 먹이를 먹는 시간이 짧아져 크기는 크지 않지만 향과 맛이 좋아 '석화(石花)'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굴은 사료를 주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양식과 자연산의 경계가 애매한 특징이 있습니다.


강에서 자라는 '벚굴'도 진미로 통하는데, 바다에서 자라는 굴에 비하여 작지만, 비리고 짠맛도 덜하고 굴 향과 감칠맛이 좋아 횟감용으로도 인기가 좋습니다. 강에서 나는 굴이라 '강굴'이라고도 불리며, 섬진강 하구의 벚굴이 유명하기도 하고 남해안 포구와 가까운 지역에서 체취 되는 벚굴들이 유명합니다.



호주의 굴 요리 Oysters Kilpatrick, 석화에 발사믹소스를 뿌리고 구운 요리이다.

굴은 일반적으로 조리하지 않고 굴회로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소주 한잔과 함께 초고추장에 마늘을 올려 먹거나 간장 양념에 먹거나 아니면 그냥 굴로만 먹기도 합니다. 유럽과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소금과 레몬즙에 비싸지 않은 가볍고 깔끔한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먹는 것을 최고의 진미로 칩니다.

 

일반적으로 조리된 '굴요리'들은 신선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나온 요리 방법으로 찌거나 굽거나 튀김용 굴요리들을 말합니다.

유럽과 구미에서는 베샤멜소스 치즈를 첨가한 네이 소스를 석화에 덮어서 오븐에 구운 '오이스터 모네이(oyster mornay)'라는 굴요리도 유명하고, '오이스터 킬패트릭(oyster kilpatrick)'이라 불리는 발사믹 식초를 뿌려서 구운 굴요리도 호주에서 인기 있는 굴요리로 통합니다. 일본은 역시 튀김의 나라답게 굴튀김이 굴요리의 대표 위치를 차지합니다.

남미에서는 식초로 회를 익히는 요리방법인 '세비체(ceviche)'라는 방식으로 굴을 요리해서 먹기도 합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굴 생산국이지만 중국 연안의 굴들은 수질이 좋지 않아 날로 먹는 것보다는 조리용 굴이 많이 생산됩니다. 중국은 굴을 익혀 먹는 문화로 주로 볶음이나 국물요리의 부재료로 사용됩니다.


중국에서 굴을 사용하는 특징으로는 굴을 발효시켜 전분과 캐러멜 색소 등을 첨가하여 중국인들만의 피시소스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호유(蠔油, háoyóu)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굴소스'입니다.

굴소스는 중국요리에서 빠지지 않는 조미료로 중국의 볶음요리와 국물요리에 사용되어 중국음식의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 줍니다. 중국의 굴 소비는 익혀먹는 요리가 대부분이 이지만, 요즘은 생굴 맛도 익숙해져 우리나라 통영 굴이 인기가 높습니다.


갓 지은 밥을 일부러 식혀서 볶음밥을 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신선하고 맛있는 굴'은 일단 생굴로 소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횟감용 굴과 조리용 굴은 따로 판매되는데, 마트에서 파는 석화와 횟감용 봉지굴은 회로 먹어도 되지만, 시장에서 오픈된 채로 파는 굴은 조리용 굴로 굴밥이나 굴국, 굴전이나 굴튀김용으로 사용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또 굴을 냉장고에 넣고 하루 이상 지나면 회로 먹는 것보다는 조리를 해서 먹는 게 바람직합니다.

굴을 씻을 때는 흐르는 수돗물에 세척하는 것도 좋지만, 소금물에서 살짝 씻는 것도 굴의 향과 맛을 보존하기 위한 좋은 방법입니다.



굴을 사 오면서 같이 들고 온 계절 과일들... 연시와 무화과.


10월 이맘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과일들이라 무조건 집어와, 저녁 디저트로 무화과와 살짝 얼린 연시를 후식으로 대신합니다. 가끔 과일과 채소들에서 계절의 힘을 느끼고, 자연과 시간의 섭리에 대해 고개 숙일 때가 있답니다.

너무나 더웠던 올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굴과 감이 나오는 걸 보니 계절은 다시 가을을 관통하는 듯합니다. 계절은 온도차에서도 느껴지지만 맛있는 계절 음식에서도 느껴집니다. 요맘때부터는 어리굴젓도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충남까지 내려가서 사 오곤 했는데, 고향 음식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먹는 편리한 시대가 참 좋지만 고향 가는 발길은 자꾸 줄어듭니다.


맛있게 살이 오른 '석화'가 시장에 나오길 기대하며, 다음에는 시원하게 '생굴과 소비뇽 블랑' 와인 마실 날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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