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

by 임찰스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는

평화의 상징


배고픔에 지쳐

쓰레기봉투를 찢어버린

평화의 상징


용두산공원 광장에서

조폭처럼 무리 지어 겁박하는

평화의 상징


언젠가부터

하늘을 날지 못하는

평화의 상징






88 서울 올림픽에서 비둘기는 화려한 상징이었다. 개회식에서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오르던 장면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보내는 평화와 화합, 그리고 세계로 도약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 당시 비둘기는 길조였으며 평화의 상징이었다.


올림픽 이후 비둘기의 개체수가 확 늘어났는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급격한 도시화가 비둘기에게 최적의 생존 환경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건물은 천적을 피할 수 있는 절벽이 되었고, 공원에서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먹이는 안정적인 생존 기반이 되었다. 도시의 따뜻한 기온이 사계절 번식을 가능하게도 만들었다. 비둘기는 더 이상 자연의 새가 아니라, 도시 환경에 완전히 적응한 '도시 동물'이 되었다.


90년대 중후반 이후 비둘기의 개체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사람들의 인식도 급격히 달라졌다. 건물과 차량은 이른바 ‘새똥 테러’로 오염되었고, 공원과 광장에는 비둘기 떼가 가득했다. 그리고 질병을 옮긴다는 막연한 불안감까지 확산하며, 비둘기는 더 이상 평화의 상징이 아닌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길가의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보행자 사이를 당당히 가로지르는 비둘기들은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때 국가적 이상과 희망을 상징했던 비둘기는, 이제 도심의 일상 속에서 가장 성가신 존재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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