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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라 강변 Apr 09. 2021

24 자존감과 에고 사이

- 나의 자존감은 어디서 왔나

친구관계라는 것이 나이, 시간의 흐름, 처한 상황의 변화 등에 따라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도 하고, 다시 가까워졌다가 아예 단절, 소멸되기도 하니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체 같다고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거의 서른이 될 때까지 베프라고 느끼며 서로 신뢰하고 아끼던 친구가 있었는데, 서른 이후 서로 다른 직업과 거주 지역의 차이, 결혼 여부,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해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제 만나도 반갑고 편안하고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그녀였다.


최근 그녀가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나밖에 없다며 2년 만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뭔가 큰일이 생겼구나, 직감적인 느낌이 와서 3박 4일 출장을 2박 3일로 마무리하고 지방에서 바로 올라와 저녁때 그녀를 만났다. 한눈에 보아도 얼굴이 너무 수척해서 가슴이 이미 저릿거렸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때가 저녁 8시쯤이었는데, 친구는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고, 오늘 처음 먹는 음식이라 했다.


친구의 사정을 여기에서 밝히지는 않겠다. 나 역시 너무 속상하기 때문이다. 다만, 친구는 너무 힘들어서 여러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성장은 10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말했다. "나와는 달리, JH는 어릴 때부터 자존감이 높았다고..."


친구와 자존감이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눴고, 며칠 동안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예전 남자친구들도 나에게 말했다. "꽤 자존감이 높다고..."


이제는 오래 알고 지낸 편인 수능을 전국에서 차차석(3등)을 했던 "똘똘이 스머프"같은 멘토 변호사님도 내게 조언이 필요한 순간에 몇 번을 그렇게 말한 적 있었다. "강변은 에고가 강하니까..., 강변은 그런 캐릭터니까..."


나의 이런 성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며칠 동안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취미생활을 즐겼던 부모님의 영향이라는 것.


예전 글 '06 내가 글을 쓰는 이유: 타인의 취향'에서 썼듯, 행복도는 자존감에 비례하고 자존감은 "내가 좋아하는 일(A)과 잘 하는 것(B)'을 할 때 높아진다는 것이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바로 '취미 생활', '취향의 발견'인 것이다.


아버지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고, 책도 많이 읽으셨고, 바둑도 곧 잘 두셨다. 등산, 테니스, 볼링, 골프 등 여러 운동도 즐겨하셨다. 어머니 역시 예전부터 지점토 공예, 꽃꽂이, 요리, 요가 등 운동, 종교행사 등에 열심이셨다. 나는 그런 부모님을 보며 자랐고 함께 생활하면서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지우개, 음악테이프, 엽서, 만화책 모으기 등에 열심이었다. 학교 숙제 다하고 남은 시간에 내가 무슨 취미생활을 하든 지지해 주셨다.  


초, 중학교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첫날 만화방에 간다며 5천 원~만원 정도의 용돈을 받아, 아침 10시쯤 만화방에 출근했다. 20여 권 정도를 빌려 컵라면/끓인 라면으로 점심을 먹으며 집중해서 만화를 보고 5시쯤 퇴근하듯 집에 돌아오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친구들과 서로 모은 만화책 100권 정도를 교환해서 2박 3일을 침대에서 내리 만화만 읽은 적도 있었다. 만화책이 너무 재미있고 슬퍼서 밥 먹기가 싫을 정도였다. 밥을 안 먹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학교 급식처럼 쟁반에 한 끼 식사를 간단히 차려 침대 맡에 가져다 주시곤 했다.


나의 부모님은 나의 취미생활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셨고, 금지하거나 간섭하시는 일이 거의 없으셨다. 나는 사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느라 늦게 직장을 가지고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것(큰 불효라면 불효지만;;) 외에 부모님을 속 썩이게 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잘 자랐다고 생각한 적도 솔직히 있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부모님께서 나에게 좋은 본보기가, 좋은 지지자가 되어 주셨던 것이다.


소개하고 싶은 한 가지 일화가 더 있다. 사실 나에게는 무릎에 4cm 정도의 큰 흉터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피아노 학원 앞 아스팔트 도로가에서 넘어져서 크게 다쳤는데, 바로 외과에 가서 상처를 꿰매는 수술을 했어야 했는데, 그게 무서워 연고를 발랐다가 정상 피부와 달리 거뭇하고 불룩한 피부조직으로 재생되며 흉터가 된 것이다. 그 무렵 사춘기가 찾아와서 그 전에는 치마를 자주 입었었지만, 흉터 때문에 바지를 입거나 무릎을 가리는 긴치마를 입거나 꼭 진하거나 두꺼운 스타킹을 신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아무도 네 무릎에 관심 없다고. 아무도 안 본다고. 아무도 네 흉터를 인식하지 못할 거라고."


정말 그랬다. 나에게 그 상처가 언제 생긴 것인지 물어보거나, 그 상처를 발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스스로 얘기하기 전까지는.


사춘기가 지나면서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살기 바빠서' , '자신의 일만으로도 충분히 머릿속이 복잡해서'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그러니 타인의 생각보다는 내 생각이, 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나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비난이나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저그런 말들 따위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네 생각일 뿐,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나, 스스로는 지나침을 경계하고 있다(그렇게 믿고 싶다). '에고라는 적' 같은 류의 책들도 재미있게 찾아 읽으며, 나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들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그 멘토분들께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타인의 평가, 악플 같은 부분에 민감하여 자존감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나의 얘기가 참고가 되었으면 하고, 나 역시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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