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률 시인 '숨' 일부 발췌
2020년, 올해는 어쩌다 보니 추석을 맞았다.
코로나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스스로와 주변의 안위를 위해서
새로운 활동과 여러 사교적인 모임, 여행을 되도록 자제했다.
그러다 보니 일-집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이 계속 반복되었던 것 같다.
마스크를 못 구해서 애를 태우다가 공적 마스크가 도입되었고,
여름인가 했는데 긴긴 장마와 몇 번의 태풍이 지나갔다.
그리고는 어쩌다 추석을 맞았다.
종갓집은 아니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아들 중 맏이인 탓에
집안에서는 설, 추석 명절뿐만이 아니라 4대 제사와 시제까지
탕국을 끓이고 생선을 찌고 전을 부치는 광경을 지겹도록 보면서 자랐고
언젠가부터 동참을 하게 됐다.
그러다 이번 '어쩌다 추석'에는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지 못하고
수도권에 살고 있는 형제자매만 추석 당일에 만나 점심, 저녁을 함께하는 정도로 정했다.
처음 겪는 명절 풍경이었다.
손주들도 보여드리고,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부모님께 영상통화로 전달해 드리며
서로의 안부를 나눴다.
기술의 도움을 받아 떨어진 공간에서도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제 추석도 소용없는갑다'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에서 쓸쓸함이 묻어났다.
가끔 시를 읽는다.
추석 연휴를 잘 보내기 위해 대여섯 권의 책을 미리 준비해 두었는데,
그중의 한 권이 이병률 시인의 신간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문학동네, 2020. 9.)이다.
코로나 시국에 시인이 느낀 감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마스크 안에서는 동물의 냄새가 났다
어떤 신호 같은 것으로 체한 사람들이
집 바깥으로 나가기를 참아야 했던 시절
몇백 년에 한 번
사랑에 대해 생각하라고
신이 인간의 입을 막아왔다
...
- 이병률, '숨' 중에서 5~6연 발췌
멀리 광주에서 추석 안부를 전해온 선배도
같은 얘기를 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인간관계, 사람,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모두가 마찬가지 인가보다.
그렇다면 더욱 격렬히 생각해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