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글쓰기
대학원 때부터 관리하고 있는 블로그가 하나 있는데, 예전에는 생각이나 독서 리뷰를 자주 썼지만 지금은 거의 기술 관련 인사이트나 자주 꺼내 봐야 하는 개발 관련 내용을 정리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
이 블로그는 하루 사용자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평일에는 150명에서 200명 사이고 주말이 되면 100명 이하로 떨어진다. 아무래도 기술 블로그다 보니 일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검색하다가 들어와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신기한 건 루티너리도 주말이 되면 접속자 수가 뚝 떨어진다. 내 블로그와 루티너리는 모두 이용자 수 그래프를 보면 일정한 파도 형상을 지니고 있다. 나는 주중용으로 소비되는 인간인가 보다. 브런치로 주말용이 될 수 있을까? 아직 조회수가 높지 않아 판단하기가 어렵다.
내가 처음 블로그를 개설하고 열심히 운영하던 시절에 대학원 동기 중에 한 명에게 나에게 '관종'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살면서 관종이란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도 했고) 그렇지 허허하면서 웃어넘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굳이 쓴 글을 누군가에게 공개하거나,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무언가 탐탁지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유튜브가 이렇게 활성화되지도 않았던 시기라 지금은 블로그를 한다고 하면 뭔가 심심하게 느껴지지만 처음 티스토리의 계정을 만들고 첫 글을 게시하는 것이 사실 나에게는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그러니 그 당시에 블로그를 한다는 건 지금 마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싶었고, 계속 그렇게 글을 써왔다. 내가 블로그를 제대로 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개발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StackOverflow를 만든 제프 앳우드라는 분 덕분이다. 보통 개발자는 글 쓰는 것을 싫어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소프트 스킬>의 존 소메즈나 제프 앳우드, 마틴 파울러 등등 그리고 그 외 여러 개발 블로그들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개발자 커뮤니티, 오픈소스 커뮤니티들도 그렇고 요즘에는 더더욱이 개인의 능력보다는 소통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모두가 아주 많이 글을 써야 한다. 블로그든, 책이든, 스택 오버플로우의 답글이든, 이메일이든 상관없다. 글을 쓰고, 그 글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글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적 사고의 흐름을 명확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어떤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정확히 설명하고자 노력해보면, 자기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제대로 모르고 있나 하는 것을 깨달으며 놀라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 시작되는 것이다.
존 스키트 (구글 엔지니어, 스택오버플로우 역사상 가장 높은 점수 보유자)
제프 앳우드의 <코딩 호러 이펙티브>에서 인용한 문장
고미숙 작가 또한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에서 우리가 책 읽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고 당연히 읽어야 할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왜 쓰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지를 말한다. 그만큼 글쓰기는 재능이 필요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읽기보다 쓰기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지만, 나도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글쓰기를 일상으로 가지고 있는 점들을 본받고 싶은 마음과 글을 쓰며 생각이 정리되는 점에 매력을 느껴 글을 계속 써왔고, 모두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많은 글들을 써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플랫폼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읽는 독자층도 다 다르다. 티스토리에서 거의 모든 걸 써오다가 브런치를 쓰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티스토리에서는 왠지 억지스러워 보이는 글들이 브런치에서는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거라면 적합한 대상이 있는 곳에 적합한 글을 쓰는 게 맞다. 스택오버플로우에 가서 오늘 코딩을 하다 잠깐 밖을 봤더니 하늘이 너무 맑아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더라 하는 얘길 할 수는 없으니까.(물론 스택오버플로우는 블로그가 아니라 원래 그러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주제가 다양한 블로그 플랫폼이라고 해도 독자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를 읽는 사람들은 브런치에서 기대하는 느낌이 있고, 티스토리나 네이버 블로그는 또 각각에서 기대하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맞춰서 쓰거나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는 건 아니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되 그 글이 잘 맞는 곳에서 그 글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렇게 적합한 장소에서 적합하게 걸러져서 그 안에서도 어떻게 어떻게 잘 맞는 사람들이 찾아서 이 글을 보고 공감하고 무언가를 얻어간다면(지식, 영감, 감정적 변화 그 무엇이든) 그런 점이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관종은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