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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Jul 07. 2020

저는 힘들때 운동을 합니다

(feat. 마음의 빨간약)

이전에 (내향적인 사람의 스트레스 해소법에서) 언급을 하긴 했지만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가능하면 여러 가지 스포츠를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싶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짧은 시간에 한계에 빠르게 다다를 수 있는 운동을 좋아한다. 학교 다닐 때는 복싱, 킥복싱, 합기도같은 격투기를 위주로 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요가의 매력을 알아서 요가를 꾸준히 해왔고, 요즘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홈트레이닝으로 할 수 있는 타바타나 맨몸 운동에 관심이 많다.


나는 살면서 오랫동안 사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이 없었다. 일을 하기 전까지는. 대학원 때까지만 해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고, 그 외의 큰 고민들은 사람과는 관련이 없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처음으로 순수하게 일한 대가 통해 수익을 얻었던 일을 시작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은 그럴 만한 환경이 없었던 것뿐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항상 사람과 관계에서 오는 것 같다. 그것보단 덜하지만 원하지 않았던 상황과 이해가 되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상황들을 예전에는 쉽게 피하고 도망칠 수 있었다면, 살면서 그러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다는 것을 배우기도 하고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순간들도 많아졌다. 


힘듦에도 종류가 있는데 그냥 단순히 몸이 안 좋거나 컨디션의 문제로 인한 육체적인 피로함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예기치 못한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책임감,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함,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 이런 것들이 항상 번갈아가면서 찾아온다.


누구나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 나도 그럴 때마다 처방을 하듯 선택하는 방법들이 있는데, 요즘은 너무 지치고 손 까딱할 힘이 없다고 느껴지면 명상을 하고 그 외에 날카로운 감정이 들 때 진정을 하고 싶다거나, 피하고 싶은 책임감과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에 부딪쳤을 때, 불안한 마음이 들 때, 답답할 때엔 대부분 운동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운동은 이런 상황들에 거의 빨간약(=상비약)이다. 일단 몸이 뜨거워지고 피가 빠르게 순환해서 그런지 생각 많고 지끈거리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게 첫 번째이다. 거칠게 내뱉는 숨에 몸속에 쌓인 화와 답답한 마음이 배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두 번째이고, 세 번째는 현재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을 계속 부풀리고 키우다 중요한 걸 보지 못할 때도 있는데, 운동을 하면 항상 조금 더 빨리 상황을 파악하는 궤도로 들어간다.


복싱이나 격투기를 배울 때 -- 특히나 코치님이 계실 때 -- 에는 그 순간의 몰입을 넘어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드는데 나는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서-- 사실 극한이라고 하기엔 우습긴 하지만 -- 내가 포기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 욕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순간에 살아야겠단 마음이 먼저 드는 게 좋았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 살고 싶다는 마음과 살아있다는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내가 고민했던 이전의 문제들은 내 생존이란 커다란 문제에 비하면 너무 작고 하찮아 이 정도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혼자 운동을 하거나 그룹으로 배우는 운동을 하면서는 살아야겠다는 생존의 단계까지 한계를 느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지 하다 보면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제 정말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만 더 쥐어짜 내면 다 떨어진 것 같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런걸 보면 내가 지금 막힌 문제들을 잘 들여다보면 보지 못한 답이 있을 것이라는 메타포가 된다. 


(운동하면서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가끔 궁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힘든 순간이 많아질수록 몸은 더 근육이 붙고 건강해진다. 

올해가 끝나면 얼마나 건강해져 있을까. 사실 조금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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