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마음의 빨간약)
이전에 (내향적인 사람의 스트레스 해소법에서) 언급을 하긴 했지만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가능하면 여러 가지 스포츠를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싶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짧은 시간에 한계에 빠르게 다다를 수 있는 운동을 좋아한다. 학교 다닐 때는 복싱, 킥복싱, 합기도같은 격투기를 위주로 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요가의 매력을 알아서 요가를 꾸준히 해왔고, 요즘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홈트레이닝으로 할 수 있는 타바타나 맨몸 운동에 관심이 많다.
나는 살면서 오랫동안 사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이 없었다. 일을 하기 전까지는. 대학원 때까지만 해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고, 그 외의 큰 고민들은 사람과는 관련이 없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처음으로 순수하게 일한 대가 통해 수익을 얻었던 일을 시작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은 그럴 만한 환경이 없었던 것뿐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항상 사람과 관계에서 오는 것 같다. 그것보단 덜하지만 원하지 않았던 상황과 이해가 되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상황들을 예전에는 쉽게 피하고 도망칠 수 있었다면, 살면서 그러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다는 것을 배우기도 하고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순간들도 많아졌다.
힘듦에도 종류가 있는데 그냥 단순히 몸이 안 좋거나 컨디션의 문제로 인한 육체적인 피로함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예기치 못한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책임감,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함,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 이런 것들이 항상 번갈아가면서 찾아온다.
누구나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 나도 그럴 때마다 처방을 하듯 선택하는 방법들이 있는데, 요즘은 너무 지치고 손 까딱할 힘이 없다고 느껴지면 명상을 하고 그 외에 날카로운 감정이 들 때 진정을 하고 싶다거나, 피하고 싶은 책임감과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에 부딪쳤을 때, 불안한 마음이 들 때, 답답할 때엔 대부분 운동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운동은 이런 상황들에 거의 빨간약(=상비약)이다. 일단 몸이 뜨거워지고 피가 빠르게 순환해서 그런지 생각 많고 지끈거리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게 첫 번째이다. 거칠게 내뱉는 숨에 몸속에 쌓인 화와 답답한 마음이 배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두 번째이고, 세 번째는 현재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을 계속 부풀리고 키우다 중요한 걸 보지 못할 때도 있는데, 운동을 하면 항상 조금 더 빨리 상황을 파악하는 궤도로 들어간다.
복싱이나 격투기를 배울 때 -- 특히나 코치님이 계실 때 -- 에는 그 순간의 몰입을 넘어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드는데 나는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서-- 사실 극한이라고 하기엔 우습긴 하지만 -- 내가 포기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 욕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순간에 살아야겠단 마음이 먼저 드는 게 좋았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 살고 싶다는 마음과 살아있다는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내가 고민했던 이전의 문제들은 내 생존이란 커다란 문제에 비하면 너무 작고 하찮아 이 정도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혼자 운동을 하거나 그룹으로 배우는 운동을 하면서는 살아야겠다는 생존의 단계까지 한계를 느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지 하다 보면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제 정말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만 더 쥐어짜 내면 다 떨어진 것 같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런걸 보면 내가 지금 막힌 문제들을 잘 들여다보면 보지 못한 답이 있을 것이라는 메타포가 된다.
(운동하면서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가끔 궁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힘든 순간이 많아질수록 몸은 더 근육이 붙고 건강해진다.
올해가 끝나면 얼마나 건강해져 있을까. 사실 조금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