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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Feb 26. 2023

새벽이었다

꿈의 기록


 새벽이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등에선 바닥을 깔고 있는 다다미의 감촉이 느껴졌다. 등에 자국이 남아있을 것 만 같다. 나의 머릿속엔 새하얀 피부에 발갛게 남았을 나의 등에 자국의 모양이 그려진다. 내 방엔 남쪽으로 창이 가로로 길게 트여 있었다. 새벽 바다 하늘의 희멀건 빛이 피부에 가라 앉으니 어느센가 자국의 감촉은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젖가슴을 만지작거렸다.


얇은 수건이 한 장 내 옆에 놓여져 있다. 잠이 든 줄도 모르고 깊게 잤다. 추운 줄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뭐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던 것 이다. 방안은 매우 조용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젖을 만져본다. 분명 나의 젖은 먼지 쌓인 창백한 커튼처럼 축 늘어지고 그 위에 마른 건포도가 하나 얹어져 있는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가슴은 이제 막 2차 성징이 시작되어서 부풀어 오르려는 조심성이 느껴지면서도 부드럽고 탄탄했다. 그리고 젖꼭지는 입 안에 들어가기 좋을 정도로 산뜻하게 알맞게 올라와 있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다다미 위에 누워 버렸다. 그리고 얼굴을 만져본다. 피부의 상태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눈 화장도 늘 그랬듯 갈색으로 흐릿하게 비슷하게 한 것 같고 다만 입술은 건조하고 창백했다. 립글로스 대신 파운데이션으로 입술 색은 죽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새로 태어난 아기처럼 단란하게 붙어 있는 이 젖가슴을 더욱 신성하게 돋보이게 했다. 아마 새로운 버릇이 생길 것 만 같다. 가슴을 계속 만지작거리는 버릇… 그러나 이런 버릇을 버리지 못 하면 어떡하지? 사람들 앞에서도 계속 만지고 싶으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이 가슴 피부아래 복잡한 전깃줄 처럼 놓여있을 혈관마저 설레는 마음으로 떠올리며 또 다시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문득 이런 나 자신에 대해 경종이 울리듯 소름이 끼쳤다.


이 가슴이 내 것이 아니라 미처 인지 하지 못 했던 어떤 실리콘 덩어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매우 크게 얻어 맞는 것 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 어떠한 이유로 나는 본래의 가슴에서 벗어나 이처럼 사춘기 소녀의 가슴에 만족을 느끼는 것인가. 아직도 여전히 이 나이에 색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여성성은 오히려 소멸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여자로서도 아닌 오직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녀와 같은 상태에 머물고 싶은 기적을 느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순수에 대한 집착이 강한 여자다.


나는 초밥 집 가게의 딸이었다. 내가 누워있는 이 방 아래 층에 식당이 있다. 어머니께서는 단촛물을 만들고 있을 것 같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방에서, 이 바다가 아른거리는 고장에서만 살았다. 어디 다른 곳으로 가 본적이 없다. 내가 만나는 남자들은 이 곳에서 일하는 종업원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 없이 내 옆에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내 머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는 내게 물었다. 염색은 언제 했느냐고. 나는 그의 물음에 당혹스러워서 뇌 속에 급작스런 빙하기가 찾아온 것처럼 새하얘졌다. 그리고 나는 머뭇거리듯 말했다. “나는 살면서 염색을 한 적이 없어.”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내게 뭐라구요? 그랬다. 더 크게 말해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나의 당황스러움은 더 커져갔다. “염색을 한 적이… 없다고…” 겨우 뚜렷한 목소리로 말하니 그가 이제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머리에 약간 갈색 빛이 돌아요.” 내가 언제 염색을 했지? 그리고는 그가 또 말했다. “ 모르시면 제가 더 말씀드려야 겠네요… 어두운 갈색은 아니고 약간 노란 빛이 도는 갈색이에요. 라푼젤이 떠오르네요. 예뻐요.” 그리고 그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가 우린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 새 생명과도 같은 가슴에 남자의 따뜻하고 묵직한 감촉이 닿았다. 차마 눈을 뜨지 못 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미 처녀가 아니면서 고작 가슴 때문에 내가 처녀라는 의식에 사로 잡혀서 그 이질감 느껴지는 감촉을 거부 해야할까 방어 심리가 들면서도 흥분되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었다. 순결한 처녀와 수차례 남자들을 받아들여본 여자의 색욕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 오묘한 심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혼란을 겪는 사이 남자 종업원은 나를 다다미 위에 눕히고 마사지 하듯이 움켜쥐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문이 열렸다. 다른 남자 종웝원이었다. 전라의 상태에 있는 남녀를 보고도 문을 닫지도 않은 채 나에게 씻을 시간이라고 얘기했다. 나도 이상하게도 그 남자 종업원이 문을 열고 바라보는 데도 그것엔 당혹스러움이나 부끄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늘 겪어왔던 일상처럼 아무 감정이 없었다. 나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남자 종업원은 다시 갔다..


가슴을 만지던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타인이 개입되었던 그와 나 사이의 뜨거운 공기는 어느새 차분히 식어 있었다.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 라니 나는 내 눈이 부어 있음을 조금은 느꼈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 않은 것인지 여전히 바다엔 새벽의 기운이 느껴지는 아득한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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