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언제나 같은 철학을 배경으로 한다. 텅빈 허무함마저 느끼지 못하는, 말그대로 상실의 공간. 이상하게도 그렇게 감정의 채색마저 다 비워낸 이야기가 우리에게 너무도 낭만적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낭만에는 양극이 있는데 배경· 분위기를 즐기는 것과 내용·사건을 즐기는 것. 이 영화 중에 '아무이유없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분위기로서의 낭만은 아이러니하게도 보편적이면서도 사적이다. 그저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당대의 사물들, 진부할 큼 익숙한 전형들. 생명이 없는 그 관용적 보편체들 사이에서 우리는 왜그리 사적이고 은밀한 감정의 유혹에 빠지는지...
하지만 이 작품은 조금 서투르다. 토니 타키타니는 모든걸 상실했다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결국 그 분위기로서의 낭만, 그 은밀한 사적 낭만에 취하고 싶은 욕망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서술자의 자기 오해에서 비롯된 과장된 허무의 포즈가 멋져보이던 시대도 있었다는게 오늘의 우리에겐 또 하나의 전범으로서 낭만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