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A와 대화 했었다. 나에게는 늘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건 A의 방에 들어가면 무슨 책이 있는지 샅샅이 흩어보는 거였다. 그러나 그 날은 그저 초조했다.
화분 으로 비치는 여름 햇살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 우울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빛을 떠올리게 했다. 그만큼 심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긴장도 되니까 마냥 몽유병 환자처럼 있을수는 없었다. 그래서 손을 가만히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우리는 대화했다. 그는 웃음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물었다. 당신은 원래 .. 웃음이 많으신가요. 그가 말했다. 아니요. 예전엔 더 잘 웃었지요. 지금은 힘든 일을 겪어와서 많이 사라진거에요... 그렇게 말하는데 웃는 얼굴에서 아주 잠깐 어두움이랄까, 이런게 보일듯 하다 곧 웃음으로 다시 환해졌다. 지난 세월 동안 게워내고, 또 게워내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찾은 멀쩡한 얼굴. 그가 굳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이미 그것을 본 것만으로 나는 가슴이 아파왔다. 나 또한 내 아픔을 게워내기 위해 잠깐 본 그 흔적에 몰입한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아픔은 다다를지라도 결국에 그것은 돌고도니까...
사람 사는 일에는 별일이 다 있어요... 오랜 정적 끝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별일이 다 있다, 별일... 그래, 별일이 다 있지. 상투적인 말이다. 그럼에도 곱씹게 된건, 그가 다른 나이 든 사람들처럼 뭉뚱그려 넘기듯이 말한 것은 아니라고 느껴져서 였다. 실은 가슴에 확 와닿았다. 별 일, 별 일... 그죠, 별 일이 다 있죠. 나는 가식적으로 이렇게 말해버렸다. 아직은 내가 겪은 일들을 별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능력도 없으면서 무심코 내뱉어졌다. 많이 힘들죠. 아직은 그렇죠. 그건 당신이 살아있어서 그런거에요. 살아있어서요? 살아낸다는게 그렇잖아요. 겹겹이 삶을 하나씩 쌓아두는 일인데, 당신은 아직... 쌓아둘 것들이 많은거에요. 그렇지만 쌓아두면 언제고.. 아플텐데요. 그가 차를 한모금 들이키더니 말했다. 네, 그래야 계속 살아있지요... 아.. 살아있다는건 그렇게 고통스러운 거군요.
0801/2016
A는 프란츠 카프카.
그와 대화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으로 짧게 쓰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