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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May 29. 2020

뜬장이 남긴 상처

평생을 뜬장에서 지낸 녀석들에겐 특징이 있다고 한다. 한 공간을 끊임없이 빙글빙글 돈다고 한다.

이 작고 검은 녀석은  펜스 내부를 고개를 푹 숙인

채 끊임없이 돌았다. 마치 가야 할 곳이 있어 바삐 움직이는 것처럼 숨 돌릴 틈도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 모습은 시간에 쫓기며 앞을 향해 나가는 좀머씨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멈춰 서서 주변을 바라본 뒤 한숨을 내쉬고 다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멈춰서 뒷발로 귀를 긁어댔다. 이 세 가지 행동이 이 녀석의 유일한 일과였다. 평생을 아무것도 없는 뜬 장 안에서 돌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걷고 걷다가 지쳐 잠드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옴 진드기는 저녁이 되면 더 기승을 부리는 것 같았다. 돌체는 빙글빙글 돌다가 아침보다 더 세차게 온몸을 긁었고 밤이 되었을 때는 가려움이 해소가 되지 않는지, 홀로 남겨진 방이 싫었던 건지 하울링을 하기 시작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내 울음을 멈췄다.

괜찮다고 쓰다듬어 주고 대신 몸을 긁어주고 싶었지만 돌체는 곁을 내주지 않았다. 돌체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관심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사람과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변 집기를 소독해주는 것뿐이었다.

진드기가 사라져 펜스를 거두게 된다면 분명 네가 빙글빙글 돌지 않아도  거야.’

하루빨리 이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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