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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Jul 08. 2021

가짜뉴스와 견주를 향한 혐오감

양주시 벤치 논란이 있던 뒤로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개를 벤치에 앉힌 보호자가, 개를 내려 달라는 봉사자 할머님의 부탁에 화를 내고 구청에 신고했고, 이로 인해 봉사자가 신고자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가짜 뉴스가 시작이었다.

이 뉴스는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짜 뉴스와 반려견이 벤치에 앉으면 안 된다는 강 훈련사의 주장이 혼합돼 사람들은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을 향한 비난 여론이 커졌다. 난 아인이와 함께 그 먼 이탈리아까지 여행했던 이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여름날, 나는 아인이를 무릎에 앉히고 뜨거운 땡볕을 피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던 적이 있었다. 평소처럼 목줄도 하고 있었고, 무릎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가 될만한 행동은 아니라 판단했다. 그런데 아파트 단체 톡방에 (그것이 나를 겨냥한 것은 아닐 수 있지만) 개를 벤치에 앉히는 사람들은 ‘극혐’이다 ‘위험하다’라며 여론몰이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혐오감이 극에 달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그 사람이 말하는 위치가 내가 앉아있던 벤치였기 때문에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게 제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하며 자진 신고를 했다.


그리고 여론에 대한 본질을 찾고자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 사람의 주장은 이랬다

 “놀이터가 매우 가까이 있으니 뛰어올 수 있다”


이 말만 들으면 그럴싸했다. 하지만 그 놀이터와 벤치의 거리는 100m 이상으로 아인이가 그리 쉽게 뛰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는 목줄을 하고 있었고, 내 무릎에 앉힌 채로 목줄을 잡고 있었다. 아인이는 높은 곳에서 뛰지 못하다는 것 또한 설명했다.


신나게 조성됐던 혐오감이 잠잠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면 ‘미안하다’, ‘내가 과장했다’ 든 지 등의 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 그러면 그쪽이 아닐 거예요’라는 무심한 말과 함께 ‘개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무책임한 여론몰이와 각종 오래된 맹견의 사건 사고와 관련한 링크가 오갔다. ‘작은 개라도 다가오면 목을 밟아 죽일 것이다’, ‘발로 찰 것이다’ 등의 험한 말도 오갔고, 그 안에서 견주들은 죄인이었다.


여론 몰이를 주동하던 그 사람은 이어서

‘우리 애가 지나갈 때 무서워하면 속상해요’

라는 말을 했고, 나는

 ‘그러면 서로 조금씩 피해 가면 되지 않을까요?’

라고 물었지만 나를 울컥하게 하는 제삼자의 답이 돌아왔다.


“이 보세요! 사람이 먼저예요!”


이 말을 들은 뒤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이럴 때에 쓰이는 건가?’

‘반려견과 함께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가?’


이들은 이미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을,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오로지 반려견만을 위한 일명 ‘개빠’로 일반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닫았다. 이 말들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어차피 결과가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여론의 본질이 ‘혐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그 논란에 심취한 사람들의 대화를 본 뒤, 나는 사람들을 일반화해 지레짐작하지 않는 습관을 갖게 됐다. 왜냐하면 이와 똑같은 혐오가 대상만 다를 뿐 사회 여기 저기에 만연해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이슈가 된 기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모든 나라의 상황, 사람, 반려견은 다르다. 그러니 ‘어떤 나라처럼 하는 것이 맞습니다’라고 단언하는 것 또한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인이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반려견이 벤치, 식당에서 사람들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으니까.


이번 논란에서 본질은 개가 ‘벤치에 앉아도 되는가 아닌가’가 아니다. 본질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 ‘혐오’에 있다. 확실했던 것은 그 가짜 뉴스가 사실이 아닌 기사를 통해  댓글창이 견주들을 향한 혐오감으로 뜨겁게 달궈졌다는 점이며, 이것이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는 점이다.


반려견을 키우다 보면 타인의 혐오감과 마주할 일이 분명 있다. 개에 물려 아팠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개를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처럼, 타인의 ‘혐오’에 덴 상처가 한 번이라도 있다면 그 기사를 읽고 나처럼 그때의 상처와 분노감을 되새김질했을 거라 생각한다.

.

 


책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벤치에 앉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던 난 마음속으로 외쳤다.




‘네, 지키고 싶은 이 벤치 평생 지키세요. 아인이는 이탈리아에 갑니다.’




#댕댕이친구들이탈리아여행가개 #혐오감 #강아지 #반려견 #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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