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아지는 안 물어요?”
뉴스에 반려견과 관련된 안 좋은 소식을 접하면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왠지 모를 죄책감과 말로 표현 못할 일종의 불쾌감과 찜찜함이 몰려오곤 한다.
아, 또 시작되겠구나
반려견을 키우면서 나는 일반화된 선입견 속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개물림 사고가 나면 평소에 감춰둔 혐오감을 불쑥불쑥 내비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누군가에게 혐오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것이 분명 정당한 일은 아니지만, 반려견 관련 사고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개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생각을 갖고 표현하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런데 반려견의 보호자로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댓글이 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말하며 풀어두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말은 견주의 전형적인 부정적 이미지로 고착화돼있다.
하지만 이런 말은 나에겐 너무나 생소하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나의 반려견 아인이는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예민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 번쯤 만져보고 싶은 외모를 가졌기에, 모르는 사람이 만지려 하면 재빨리 도망가거나 으르렁거리곤 했는데, 이런 예쁘장하지만 예민한 반려견의 보호자로서 오히려 만지려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그리고 절대 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물어요!"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해도 반드시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물지 않더라도 반려견으로선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만진다는 건 무례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말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경이 복잡해진다. 반려견의 보호자들 가운데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반려인으로서의 일상이다. 그래서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말은 내게 너무나 이질적이고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한 인위적인 말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견주인 나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진 않는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말이 만들어낸 선입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히 더 많은 사람들이 펫티켓을 지켜야만 이런 일반화된 선입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나는 일반화된 선입견에 따라 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무례하고 편협한 행위라 말하고 싶다. 세상엔 어느 하나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양인이라 해서 모두 너드가 아니며, 한국인이라 하여 모두 김치를 먹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 해서 꼰대도 아니며, 아이를 키운다 해서 맘충이 아니며, 개를 키운다 하여 무조건 개 물림 사고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다 그래", "남자는 다 그래", "한국인은 다 그래", "개 키우는 사람들이 다 그래"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행동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보편화된 선입견으로 한 사람의 행동을 평가하는 편이 더 손쉽고 편리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를 평가할 때, 보편화된 선입견을 적용하는 것은 과연 정당할까?
나는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몇 안될 것이라 생각했다. 개를 혐오하는 사람이 견주를 비난할 때 논리적 바탕 없이 댓글창에 사용하는 고정적인 멘트일 것이라고……길에서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환하게 미소지으며 물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전설 속 유니콘같은 존재를 만나본 나는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댓글이 절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 것이란 믿음 자체가 내 선입견이자 내 경험의 부족함에서 온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다. 나 조차도 견주들 사이에서 만연해있는 보편화된 선입견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보편화된 선입견을 바탕으로 판단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댓글창은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댓글창엔 실체가 없는 선입견 가득한 말들이 오가며 서로에게 생채기만 낼 것이니 내가 가진 보편화된 선입견과 맞서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