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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Aug 16. 2022

개를 혐오하나요?

혐오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무력감이란 참으로 무섭다. 한동안 무력감 때문에 반려견에 대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모두가 조화롭게,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자 하는 마음으로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그 어떠한 노력도 헛되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입을 꾹 다물게 됐다.


나에게 무력감을 준 것은 눈먼 혐오감이었다.




처음 반려견에 관련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글을 통해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세상을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라 반려견이 사랑받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소개했다. 반려견을 향한 혐오감이 더욱 경감되길 바라면서.

하지만 내가 소통하고 있는 대상은 한정되어있었고, 주로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은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거나 글을 읽으며 다양한 세상을 접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개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글로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는데, 특정 대상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설득도 효과가 없었고, 결과는 이미 '혐오'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었다.


개 물림 사고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서 나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개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반려견을 키우는 모든 사람들을 '개를 키우며 질서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보고 있었고, 이들과 맞서는 사람들은 개에 트라우마가 있어 개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마저도 '혐오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몰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이들 모두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는 점이며  '남의 감정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관점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혐오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혐오감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사명이라도 가진 듯 다양한 근거를 대가며 혐오의 철옹성을 치고 있었다. 양측 모두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에 바빴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댓글로 반대의 상황이나 의견을 제시하기라도 하면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 했다. 사람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서로 맞춰갈 생각이 없었다. 이들은 서로 타인을 나에 맞게 뜯어고치려고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반려견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이것은 내게 심한 무력감을 주었다.




하지만 잘 따지고보니 내게 무력감을 주는 것은 반려견을 향한 혐오감이 아니라, 혐오감을 갖고 자신이 가진 혐오감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려 하는 노력이었다. 어떤 대상을 혐오하는 마음. 날 선 혐오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이들의 강한 주장에 이끌려 덩달아 그 주장에 가담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반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결론만을 위해 이루어지는 소통 없는 소통을 보며 한동안 무력감에 빠져있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정말로 남의 감정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글을 쓰지도, 타인을 댓글로 설득하지도 않을 테니까.


오히려 이들은 자신이 비난하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반려견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며 모두가 함께 배하는 삶을 계속해서 꿈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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