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의 숲

참나물과 타향살이

by 생각여행자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가족의 온기와 우리나라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향기와 맛일 것이다. 아주 잠시 동안 타향살이를 할지라도 매일 먹던 맛과 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 가족은 길지 않은 독일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음식을 통해 한국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


식재료가 다르다


한국음식 열풍으로 요즘은 해외에서 우리나라 음식을 구하기 쉽지만, 1990년대 독일에서 한국 식자재를 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당시 독일에는 수박도 배도 참외도 없었고, 귤도 모양은 같아도 향과 맛이 달랐다. 김치의 주 재료인 무도 배추도 없었다. 그래서 김치를 담그기가 쉽지 않았는데, 일반 마트에서 배추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배추는 독일에서 '중국 양배추 Chinakohl'라고 불릴 정도로 희귀했다. 가끔 주로 터키인들이 찾는 야채가게에 가면 찾아볼 수 있었다.


마을엔 딱 하나의 한국식당이 있었고, 한국음식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선 멀리 떨어진 한인마트나 한국인이 운영하는 농장을 찾아가야 했다. 한인마트에는 라면,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등의 한국 식품을 판매했지만 그보다 더 찾기 어려운 것은 한국 야채였다. 그래서 김치를 담글 즈음이 되면 재료를 구하기 위해 한인 농장을 찾는 차량이 주차장에 가득했다. 엄마는 당장 식재료를 구할 수 없을 때 독일 식재료를 이용한 임기응변식 변형 요리를 준비했는데, 그중 하나가 양배추 김치였다. 아무리 해외라 해도 요즘은 네이버로도 레시피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90년대엔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요리책과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생활의 지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식재료와 레시피가 없어 힘들었음에도 엄마는 열심히 한국 음식을 준비했고, 우리 가족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


우리나라 음식 가운데 독일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것은 나물이었다. 향이 독특해서인지 야채를 데친 뒤 무쳐 먹는 방식이 달라서인지 독일인들은 나물을 먹지 않았다. 한식과 나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참기름 향이 가득한 나물 반찬을 꼭 식탁에 올렸다. 시금치나물과 참나물이 전부였지만 어린 나도 맛있게 먹었다. 이 두 재료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시금치는 마트에서 구할 수 있었지만 참나물은 독일인 마트뿐만 아니라 한인마트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우리에겐 참나물 숲이 있었다.


참나물 숲


독일 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갑자기 봉지를 들고 집 앞에 있는 숲에 가자고 했다. 숲 입구에는 어머니의 친구분이 기다리고 계셨고 우리 셋은 숲길을 따라 들어가다가 길이 없는 숲 속으로 들어섰다. 아주머니는 어떤 풀을 보여주시면서 이걸 캐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참나물이라 했다. 참나물을 캘 때면 조심해야 했는데 바로 옆에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면서 하루 종일 따끔거리는 쐐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그날 참나물 한 봉지를 캤고, 그날 향긋한 참나물이 밥상에 올랐다. 맛있는 식사를 할 생각에 이따금씩 엄마와 함께하는 참나물 따는 시간이 퍽이나 즐거웠다.

참나물의 생김새를 알게 된 뒤로 엄마와 나는 몇 번 숲을 찾았다. 그 당시엔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고 식물을 채집하는 행위에 대한 이렇다 할 경고도 없었다. 숲엔 특별히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독일인 할머니가 숲을 지나가다가 길을 벗어나 참나물을 따던 우리 모녀에게 다가와 무엇을 채집하고 있는 것인지 물었다. 두어 번 동양인이 숲에서 채집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했다. 독일인이 '나물'을 먹지도 않아 알맞은 독일어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 엄마는 '샐러드'라고 답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곳은 우리의 샐러드 숲이었다.

반찬가게에 참나물이 보일 때면 난 꼭 참나물 한팩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맛깔스러운 다른 반찬들도 많지만 나는 꼭 참나물을 집어 든다. 맛은 음식을 먹던 순간의 즐거운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타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참나물을 먹으며 어린 시절 샐러드의 숲에서의 추억에 빠져든다.




이전 06화넌 나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