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양 어린이가 학급에 불러온 파장
학교엔 나를 동양인이라고 놀리거나 괴롭히는 아이는 특별히 없었지만, 유달리 나를 따라다니며 훈계를 하려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친구들에게 주기 위해 한국에서 예쁜 학용품을 준비해 갔었는데, 그 아이만큼에게는 얄미운 나머지 선물을 주지 않았다. 참 치사했다. 서운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그 아이는 더 집요하게 내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했는데, 나는 언젠간 그 친구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독일어를 잘 못할 무렵이었지만 나는 어떤 문장을 준비했고, 내게 지적을 하자마자 기다렸단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너는 나치야 Du bist Nazi
모든 아이들이 한 순간에 조용해졌다.
'어라, 이게 아닌가?'
그 아이는 충격을 받은 것인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가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고,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선생님은 그 친구를 따로 불러내 귀가시켰고, 내게 정황을 물었다. 내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파장을 불러왔던 것이다. 사사로운 일 때문이었다는 것을 선생님도 알게 됐음에도 그 친구는 2주 정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 사이 아이들에게 '차별'에 대한 교육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가정통신문이 배부됐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나치라는 말이 독일인에게 주는 무게감을 잘 몰랐다. 고작 '넌 일본 놈이야' 수준의 모욕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 말은 우리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그 어떤 모욕보다 심각한 말이었고, 한 아이에게 낙인을 찍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초등학생이었음에도 독일 아이들은 어두운 독일의 역사를 이해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행히 그 아이는 학교로 돌아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냈고, 내게 훈계하는 것을 1/4로 줄였다. 난 그 친구의 오지랖 넓고 훈계하기 좋아하는 성가신 성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