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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Oct 17. 2022

엄마와 독일 운전면허증

한밤중 공동묘지를 찾는 빨간 차

    독일에 도착한 뒤 우리 가족이 맞이한 가장 큰 난관은 '차'였다.

한국에서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아 아버지가 운전면허를 따지 않으셨는데, 독일에 와서 보니 면허가 없는 집은 우리 집뿐이었다. 그래서 독일에 도착한 직후 우리 가족은 다른 한국인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90년대엔 파견 직원의 100%가 남자였는데, 차를 소유한 집도 많지 않았고 그 당시 운전도 남자의 몫이었기에 우리는 이웃들의 황금 같은 주말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래서 엄마는 밤을 꼬박 새 가며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했다. 절박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그 어렵다는 독일의 운전면허 필기와 실기, 도로주행에 통과해 면허를 한 번에 따냈다. 기쁜 마음에 우리는 중고차 매장으로 달려갔고, 세련돼 보이는 한국에서는 선택하지 못할 법한 빨간 승용차를 골랐다. 멋진 차를 타고 큰 마트와 이케아에 나갈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하지만 새 차가 생겼음에도 우리의 발은 꼼짝없이 묶여 있었는데, 그건 바로 엄마의 운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혼자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엄마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연습을 더 해야 한다 하셨다. 우린 아버지의 퇴근시간을 기다렸고, 차들이 다니지 않는 야심한 시간에 차에 올라타 운전연수를 했다. 초기에는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을 찾아야 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적합한 곳은 집과 가까운 공동묘지였다. 차도 사람도 없었던 그곳은 사고 없이 운전을 연습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였다. 그래서 엄마는 공동묘지 입구까지 가서 주차를 한 뒤, 바로 돌아오는 연습을 했다.

    공동묘지 코스를 연습한 지 일주일 가량 됐을 즈음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차를 몰고 공동묘지 입구까지 가는데, 주변이 너무 어두웠다. 가로등이 꺼진 것이었을까? 그날따라 묘지를 향하는 길이 더욱 어두컴컴하게 느껴졌고, 나무들이 차 위로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오로지 차의 헤드라이트에 의존하며 길을 갔고, 엄마는 어둠 때문인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끼익!


묘지의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엄마가 차를 급히 세웠다.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묘지의 입구에 웬 노인이 서있는데, 엄마가 놀란 나머지 차를 급히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 늦은 시각 노인이 왜 묘지를 찾았지?’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노인은 우리 차에 다가와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창문을 내리자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노인은 웬 빨간 차량이 매일 한밤중에 공동묘지에 온다는 제보를 받았다 했다. 공동묘지 관리인이었던 그녀는 대체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찾을 일이 무엇인지 우리의 용건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운전연습 중이라는 우리의 말에 그 노인은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안전운전을 하라며 인사를 건넸다.

    해외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것만큼 생소하고 두려운 것이 있을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헤드라이트에 의존하며 가야 했던  캄캄했던 길은, 타지에서 운전대를 잡아야 했던 엄마가 느꼈을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겠지만,  당시 엄마는  어떤 한국인도 공감하지 못하는 두려움, 그리고 막막함과 홀로 싸워 이겨내야 기에  누구보다도 외로웠으리 짐작해본다. 아직도 엄마의 지갑의  칸에는 독일 운전면허증이 있는데, 그건 낯선 땅에서 가족의 편안한 생활을 지켜내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해낸 엄마의 훈장이나 다름 없다. 30  묘지에서 들었던 덕담 때문일까? 엄마는 아직까지 무사고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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