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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Oct 12. 2022

나의 망한 크리스마스트리

로망을 너무 오래 간직하면 안 되는 이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데에 가장 중요한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치르는 독일에선 12월 초부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되는데, 광장 한가운데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온갖 조명이 설치되며, 계피향이 가득한 과일과 함께 끓인 와인인 글뤼바인과 각종 간식을 판매한다. 독일인들은 연말까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이어간다. 그래서 마켓과 트리를 대부분 12월 말일에 완전히 철거하며 1월 1일을 정돈된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한다.



    겨우내  함박눈이 내리는 독일은  어느 때보다 아늑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있게  주었고  당시 우리 가족은 종교는 없었지만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따스한 분위기에 동참하며 각종 조명을 구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엔 부족했고, 엄마와 나는 생에 처음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해보기로 했다.

    집 앞 마트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는데, 그곳엔 플라스틱으로 된 나무뿐만 아니라 화분에 심어진 소나무도 전시돼있었다.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된 크리스마스트리의 퀄리티가 많이 좋아진 편이지만, 그 당시 플라스틱 트리의 색도, 모양도 아주 조악했다. 정원에 심는 용도라고 말하는 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검정 화분에 담긴 싱싱한 소나무, 정확히 말해 전나무를 골랐다. 엄마는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살면서 가장 무거운 것을 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라 한다면 첫 째는 엄마가 구입한 대리석 기둥 조각일 것이고, 두 번째가 바로 이 뿌리째 검정 화분에 심어진 크리스마스트리일 것이다. 나무의 사이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향한 나의 욕심만큼 컸고 화분은 그 크기만큼이나 무게도 상당했다. 엄마와 나는 도보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를 20분이나 쉬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무거운 전나무 화분을 집안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 나무는 의외로 튼튼하지 않았다. 내부 온도가 나무에 적합하지 않아서인지 나무가 매일 생기를 잃어가며 바싹바싹 말랐고, 이파리 끝부분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무에 옷가지가 스치기만 해도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누런 나뭇잎이 우두두두 떨어졌다. 크리스마스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풍성하던 나무는 이파리를 잃어 벌거숭이가 되어버렸고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걸어두니 가지가 부러지거나 축 늘어졌다. 나는 종종 내 생애 첫 크리스마스트리를 떠올리며 홀로 실소를 터트리곤 한다. 크리스마스의 활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무거운 검정 화분은 그야말로 망작이었다.


철 지난 크리스마스트리를 언제 정리해야 하는가?

                

    크리스마스를 넘기고 1월 1월이 되자 우리에겐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 겨우 이고 지고 온 트리를 쉽게 버릴 순 없었다.  살아있는 나무를 버리는 규정 또한 찾기 어려웠고, 다시 이 무거운 트리를 밖으로 가져나갈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앙상하게 그지없는 트리를 그대로 두자니 너무나 초라해 보이자 우리는 1월 1일을 지난 겨우내 크리스마스 장식을 걸어둔 채로 지냈다. 봄이 되었을 무렵 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뗄 수밖에 없었고, 엄마는 화분을 정리하자 했다.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 무거운 화분을 다시 낑낑대고 나르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고, 나는 정리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고는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음에도) 새해에 필요할 것이라는 새로운 핑계를 대며 화분을 정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나무는 점점 말라 가지만 남은 채 점차 말라죽어갔고, 이듬해에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져 트리를 장식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트리는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이사 올 때까지 거실에서 대략 2년가량을 생존했다.


    지금의 나는 매년 12월 1일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장식하기 시작해 31일엔 반드시 정리한다. 조금 더 오래 장식해두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만 이듬해의 새로운 설렘을 위해 제때 정리한다. 분명 매년 같은 장식을 하는데도 설레는 이유는 기다림의 시간 때문 아닐까? 그토록 단호하게 트리를 1월이 시작되기 전에 정리하는 나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 크리스마스트리의 로망이 점점 초라하게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모든 것에는 알맞은 타이밍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적절한 때의 소중함을 이미 오래전 깨달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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