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타 Dec 13. 2022

동생을 질투하는 내가 너무 구질구질했다

엄마의 1순위는 나라는 걸 알면서도

올해의 나는 누구의 물음에도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바쁘게 살았고, 그 바쁨의 대가는 면역력 저하로 이어졌다. 고작 몇 분 찬바람을 맞았을 뿐인데 접촉성 피부염을 얻었고 잊고 있던 한랭 알레르기가 되살아났다. 멀쩡하던 귀 밑이 찢어지고 머리카락이 바스러졌다. 여느 때 보다 많이 먹고 있는데 살이 찌지 않았다. 비상, 이건 지금 당장 연차를 내라는 신의 계시다.


평소에는 믿지도 않는 신의 부름에 누구보다 빠르게 응답한 나는 조속히 본가로 향했다. 갑작스레 개최된 회식 참석 후 발걸음을 돌린 탓에 밤 11시가 넘어서야 버스에서 내렸지만,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 엄마다. 카시트에 엉덩이를 대기가 무섭게 두 여자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얼마 전 갔다 온 결혼식 이야기, 이모의 승진 이야기, 할머니 댁 옆집 사람 이야기까지. 나 보다는 남을 생각하며 살아온 엄마답게 시시콜콜한 대화에서도 엄마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없었다.


요즘 우리 가족의 최대 관심사는 주홍이의 고등학교 입시다. 연초에 생긴 외고에 대한 마음이 입시 시즌까지 이어져 자소서와 면접을 준비하게 되었고, 생애 첫 큰 도전을 앞둔 아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모두 힘을 모아 공동육아를 하는 중이다.


이런 가풍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데에 사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가 낳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에게 질투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생 때문에 엄마가 미웠다. 어린 시절의 나를 대했던 엄마의 태도와 홍이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방금 감고 나온 머리에서 물이 떨어지면 물기를 꼭 짠 뒤에 돌돌 말고 나와야지 이게 뭐냐고 혼나는 게 정상인데 홍이에게는 어이구 우리 애기 그러다가 감기 든다며 이모가 말려주겠노라 드라이기를 찾았고, 몇 숟가락 남기고 그만 먹겠다는 나에게는 매서운 눈으로 싹싹 긁어먹으라고 했던 엄마인데 홍이에게는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으면 체한다는 난생처음 듣는 말과 함께 신라의 미소 같은 자애로운 얼굴을 보였다.




어머니 맨날 아이고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시던데 (소곤소곤)


작음이*도 나와 같은 서러움을 느낀 시절이 있었나 보다. 물론 이때의 작음이는 고작 아홉 살, 지금의 나는 서른이 넘었다는 냉혹한 현실에 조금은 머쓱하다.

*작음이: 남자 친구(키가 작음/뒤늦게 패션에 눈을 떠 덮어놓고 사제끼다 보니 텅장을 마주한 관계로 긴축정책 준비 중)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참을성이 그리 많지 않은 나는 결국 터져버렸다. 왜 언니는 보라인데 나는 덕선이냐며 눈물 콧물 쏙 빼고 울던 응팔의 덕선이처럼 엉엉 울었다. 왜 나는 못하게 해 놓고 홍이는 뭘 하든 예쁘다고 하냐, 왜 나는 안 해줬으면서 홍이는 찾기도 전에 다 해주냐 등 창피해서인지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건 확실하다. 지금 생각해도 구질구질하지만 온 마음으로 서러웠다. 엄마 딸은 난데, 나는 잘못하면 혼나고 맞았는데 왜 홍이는 뭘 해도 사랑으로 감싸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음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엄마의 손에는 캐릭터 초코빵 두 개가 들려있었다.

"하나는 홍이 거, 하나는 우리 현타 거~"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캐릭터 빵이 웬 말이냐며 쌜쭉거린 후 잽싸게 빵 봉지 하나를 들고 방으로 향했다. 어제 일이 생각나서 자꾸만 입술에 힘이 들어가고 어색한 웃음이 나왔지만 기분이 좋았다. 덕선이 사건 이후 엄마는 공평해졌다. 뭘 사도 같은 걸 두 개씩 사 와서 우리에게 주었다.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주말 아침 비몽사몽인 채로 거실로 나가던 찰나, 엄마와 이모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엄마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그게 서운했나 봐. 근데 있지, 나 그때는 그냥 살기 바빴어. 애한테 정을 주고 사랑을 주고 하는 것보다 당장 내 딸 가르치고 먹고 입히는 게 제일 중요했어. 혼자 키우는데 부족하게 키우고 싶지는 않고 나도 너무 스트레스받으니까 애한테 화는 화대로 내고. 지금에야 내가 뭐 딸 저렇게 혼자 잘 커서 걱정할 일 하나 없으니 현타 키울 때 못했던 거 홍이한테 해줬던 건데 속상했나 봐. 아우 엄마 참 힘들다~"


열려던 방문을 조용히 닫고 침대로 돌아가 또다시 엉엉 울었다. 엄마는 또 줄 생각만 하고 나는 또 받을 생각만 했다는 것을 알았다. 뭐 먹고 싶냐는 물음에 육개장이라고 답하면 사골 끓이는 들통에 한 달 먹고도 남을 육개장을 끓여두는 것, 주변에서 받은 스벅 기프티콘을 받자마자 나에게 전달하는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나에게 제일 먼저 공유하는 것 등은 또 까맣게 잊고 한참 어린 동생에게 질투하기 바빴던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제법 잘 굴러간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다. 고마운 건 고맙다고, 미안한 건 미안하다고 그때그때 말하며 앙금이 쌓이지 않도록 노력한다. 내가 좋아하는 최근의 엄마 카톡 두 개를 첨부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8시만 넘으면 자는 사람이 11시에 날 데리러 온 것은 사랑


 등산하다 말고 온 동네방네 지푸라기 다 모아서 하트 만들어 보낸 것도 사랑




매거진의 이전글 어서 와, 겨울 타는 여자는 처음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