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면 멀어지는

인어공주 2차 창작

by 황금 거북이

우리 가족은 모든 게 완벽하다고 한다. 다리가 불편한 나 김인아만 빼고는...


강원도 속초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우리 부모님은 운이 좋아 고래 똥이라고 하는 용현향을 줍게 되었고,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똑같은 번호로 산 로또 10장이 모두 1등에 당첨되어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 로또 당첨금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완벽한 가정에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해 의족을 착용하고 다니거나,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지만, 아직까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은 세상에 나를 놓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휠체어에 앉아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노래만 부르는 것이 내 유일의 낙이자 희망이다. 집에서 홈스쿨링으로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끝났지만, 대학교는 입학하지 않았다.

이제 성인이라고 하지만, 나는 학교 한 번 가지 못한 체 19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부모님이 바쁘게 해외 출장 가면, 부모님 몰래 의족을 착용하고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나간다. 여기에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 더운 여름 나는 너무 멋있게 생기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길거리 가수를 보게 되었다.


왕자 난이라는 인플루언서이자 길거리 가수 유튜버이다.

너무 멋있다. 정말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런 외모를 갖었다.

정신없이 왕자난을 보고 있다가 길거리 사람들에 밀려 의족을 착용하고 있던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던 왕자난 앞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요?”

그가 말했을 때, 처음 또래 남자와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다.

부끄러워서 나는 일어나자마자 도망치고 말았다.


그날 이후, 그 생각에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노래 부르는 모습, 그가 활동하고 있는 소셜 SNS, 그냥 모든 게 좋아 보인다. 이 떨리는 심장은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용기를 냈다. 다시 한번 그 앞에 서기로 했다. 나름 준비를 많이 하고, 고속 열차를 탔지만, 1분 만에 서울역에 도착하는 것 같았다.


왕자난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나한테 넘어진 사람이죠.”

나는 부끄럽게 그에게 말을 했다.

“네. 맞아요.”

그날 이후 우리는 가끔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그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연락하는 한 명의 여자일 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그러던 중 왕자난과 함께 천천히 길을 걷고 가고 있을 때, 건너편에서 신호등이 점멸 신호로 바뀌었다.

“여기는 신호가 기니까 빨리 뛰어 건너가자. 인아씨.”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의족이기 때문에 걷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역인데, 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의 다부진 근육의 손이 나를 잡아당겼지만, 나는 함께 달릴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난 걸어 갈게요."


미안했다.

나는 뛰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왕자난은 길거리 노래 유튜버이자 인플루언서이지만, 그는 운동을 상당히 좋아한다. 큰 키에 달리기도 좋아해서 그는 평상시에도 피트니스 센터에서 시간을 자주 보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더운 여름, 나는 다시 그를 만나고 싶어서 서울역에 찾아갔지만, 이미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인 그가 보였다. 나에게는 빛이 나기 때문에 그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운동 유튜버 김하니가 있었다. 나도 유튜브를 통해 본 그녀는 긴 다리로 롱보드도 타고,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처럼 달리면서 영상을 찍는 운동 유튜버이다.


나는 왕자난 곁에 갈 수 없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도, 도마뱀이 아닌 이상 없는 다리가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만나는 것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몇몇의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행복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그 역시 부자가 된 소수의 사람들처럼 소수이다.

그날 이후, 나는 멀리서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몇 차례 그가 연락을 해왔지만,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아주 더운 여름이 거의 지나가고 있던 시기, 그의 SNS에는 이제 두 명의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의 유튜브도 이젠 김하니와 함께 나오고 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나는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부모님은 이런 결과를 알고 있었던 건 아녔을까?

바다가 보이는 내 방에서 다시 휠체어에 앉아 나는 울었다.

내 눈물이 마치 바닷물에 빠져 거품이 일어나는 것처럼 파도가 쳤다.

그렇게 파도가 치며 물거품이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나는 바라만 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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