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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Lee Feb 21. 2016

동일함에 대한 집착

변화는 언제나 두렵다.

익숙한 것들에서 낯선 것들로 나아가는 전환(transition)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힘든 것이지만 자폐성 장애아들에게는 특히 더 힘든 일이다. J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J의 세계에서 예상되지 않은 변화와 전환은 참사나 악몽과 같은 경험으로 종종 중증의 심리탈진이나 분노발작으로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쁜 반응은 아마도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을 들 수 있겠다.


2007년 처음으로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 잠시 동안 아는 사람의 집에 임시로 머무른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당시 1학년이었던  남자아이를 만났는데, 나중에 그 아이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약간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폐성 장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그런 증상을 가진 아이를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냥 보기엔 정상아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책상 위에 너무나도 가지런히 잘 줄 세워 정리되어 있던 공룡 장난감을 우연찮게 흐트러지게 했을 때 너무나도 비정상적으로 화를 내던 모습에, '이 아이는 좀 이상한 아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 몇 년 후 내 앞에 닥치리라고는 그 당시에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J가 2살 되던 무렵에도 여전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글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것이 영어 알파벳이든, 한글 자모이든 개의치 않고 순서대로 나열하고 단어를 만들고 하면서 몇 시간이고 놀곤 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가장 먼저 마루를 가로질러 한 3 미터 정도 이어지는 대형 기차 알파벳 퍼즐을 맞추는 것이 주요일과였다. 퍼즐을 다 맞추고 나면 그 주변을 뛰면서 마냥 좋아했다. 이후 J는 알파벳을 시작하는 글자인 A에 집착했는데, 어딜 가든지 항상 A를 들고 다녀야 했다. 가끔 그 대상이 소문자 a로 바뀔 때도 있었지만 거의 항상 특정 퍼즐조각이나 자석글자에서 나온 A가 꼭 있어야 했다.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물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같은 A글자라도 자신이 놀던 퍼즐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분노발작을 보였다. 그래서 당시에 가장 큰 걱정은 혹시라도 특정 글자를 잃어버려 못 찾게 되는 것이었다. 요즘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곤 하는 J가 4권까지 읽은 다음, 후속편이 대출되어 7권을 빌려왔더니 5, 6권을 읽기 전까지는 7권을 읽을 수 없다고 떼를 쓴다. (그나저나 5, 6권 빌려가신 분은 빨리 반납 부탁드립니다.)


자폐성 장애아들이 장난감을 특정 순서대로 계속해서 줄 세우기 하는 것은 고전적인 자폐증의 신호로 간주된다.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아이들도 기차를 정렬하지만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유연성을 보이는 것에 비해 자폐성 장애아들은 한 가지 방법을 고집하며 단 하나의 기차라도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면 분노발작을 일으킨다. 또한 정해지거나 익숙한 순서대로 일과가 진행되지 않거나 한 가지 활동에서 다른 활동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분노발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럼, 도대체 왜 자폐성 장애아들은 동일함에 집착하는 것일까? 한 가지 가능한 가설을 들자면, 제한된 감각만으로는 예측 불가한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기제(defence mechanisms)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는 게 확실하지만 자폐성 장애아들이 동일함을 필요로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특징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데도 장애가 되는데, 유연한 놀이를 할 수 없고 자기 방식만을 고집한다거나 주고받기와 같은 다른 아이들과 노는데 필요한 기술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1] 하지만 이런 동일함에 대한 집착이 행동이 아니라 관심사 등으로 나타나면, 특정 사물이나 주제에 대해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자폐성 장애인 서번트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1. https://iancommunity.org/cs/challenging_behavior/insistence_on_sam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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