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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Lee Mar 22. 2016

설포라판

자폐증도 치료하는 브로콜리 새싹

새싹 다이어트가 인기인 적이 있었다. 아직도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로콜리 새싹 성분이 자폐증의 증상을 완화해준다는 결과가 한 임상실험을 통해 드러났다.


2014년에 존스 홉킨스 병원(Johns Hopkins Medicine)에서 수행한 소규모 임상실험 결과에 의하면, 브로콜리 새싹에 들어 있는 성분인 설포라판(sulforaphane)이 특정 암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s, ASD)의 고전적 증상도 완화해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연구는 매스제너럴(MassGeneral) 아동병원과 존스 홉킨스 의대의 연구팀이 13~27세의 중등도~고도 자폐증을 보인 장애인 4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것이다. 그 결과, 설포라판을 섭취한 실험군은 위약을 섭취 대조군에 비해 사회적 상호작용과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증가하고 반복적이고 의례적인 행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년간 설포라판을 연구해온 약학 및 분자과학과 폴 탤러레이(Paul Talalay) 교수는 이번 연구가 세포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여 자폐증의 증상을 개선할 수 있음을 입증한 최초의 사례라고 말했다. 또한 유매스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UMass Memorial Medical Center) 소아신경학과 앤드류 짐머만(Andrew Zimmerman) 교수도 이번 발견이 자폐증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선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자폐증 치료를 위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스 홉킨스 대학 소아정신과 창립자인 리오 카너가 약 70년 전에 자폐증을 세상에 알린 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1~2%가 자폐증 환자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에 자폐증에 수반하는 생화학적, 분자적 이상이 규명되었음에도 아직까지 근본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자폐증과 관련된 생화학적, 분자적 이상의 상당수는 세포의 에너지 생성 효율과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자폐증 환자에게서 종종 높은 수준의 산화스트레스(oxidative stress)가 발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화스트레스란 세포의 호흡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해로운 부산물이 축적되는 것을 말하는데, 염증과 DNA 손상, 나아가 암과 기타 만성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1992년에 탤러레이 교수와 연구팀은 "설포라판이 산화스트레스, 염증, DNA 손상에 대한 인체의 천연방어 능력을 강화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후에 설포라판이 인체의 열충격반응(heat-shock response, 고온으로 발생한 스트레스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연쇄반응)을 개선하는 기능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폐성 장애아들의 부모 중 약 절반이 "아이가 고열이 날 때 자폐증 증상이 현저히 개선되다가 열이 내리면 다시 증상이 악화되었다"라고 증언한 것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열효과(fever effect)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2007년에 짐머만 박사가 일화적 증거들을 임상적으로 검증한 후 실재한다는 점까지 확인했지만, 그 배경에 있는 기작은 밝히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서 연구팀은 설포라판이 열과 마찬가지로 인체의 열충격반응을 촉발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착안하고 '설포라판을 자폐성 장애아들에게 투여하면 자폐증 증상도 일시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수립했다. 이번 연구는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임상실험을 실시하기에 앞서서, 연구팀은 3개의 표준 행동평가방법을 이용하여 자폐성 장애아들의 행동을 평가했다. 여기에는 비정형 행동 검사목록(ABC), 사회적 반응성 척도(SRS), 전반적 임상 척도(Clinical Global Impression-Improvement scale, CGI-I)가 사용되었다. 이 평가방법들은 감각의 민감성, 사교성, 언어적 의사소통능력, 사회적 상호작용, 기타 자폐증과 관련된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26명의 대상자들에게 체중을 감안하여 9~27mg의 설포라판을 투여했고, 14명의 대상자들에게는 위약을 투여했다. 그리고 치료가 계속되는 동안 4, 10, 18주 차에 각각 행동평가를 다시 실시하고, 최종평가는 치료가 끝난 지 4주 후에 실시했다.


연구 결과, 설포라판을 투여받은 자폐성 장애아들은 대부분 4주 만에 현저하게 증상이 개선되었고 그 효과도 치료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18주 후에는 ABC와 SRS 점수가 각각 34%, 17%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구체적으로 성급함, 무기력, 반복적 운동, 과잉행동, 인식, 의사소통, 동기부여, 매너리즘 등의 항목에서 점수가 개선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CGI-I 점수를 보면, 사회적 상호작용, 이상행동, 언어적 의사소통과 관련된 항목의 점수가 현저하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자폐성 장애아들은 연구팀과 눈을 맞추고 악수를 청하기도 했는데, 이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효과는 설포라판의 투여를 중단하자 마치 열병이 나은 후에 자폐증 증상이 재발하는 것처럼 사라졌다. 탤러레이 교수는 설포라판이 일시적으로 신경세포들을 도와 자폐증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브로콜리에는 다양한 품종이 있으며, 각 품종별로 함유하고 있는 설포라판 전구체의 양이 제각기 다르다고 한다. 더욱이 이러한 전구체를 설포라판으로 전환시키는 능력도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다량의 브로콜리나 기타 다른 십자화과(cruciferous) 식물을 섭취하더라도, 이번 연구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양의 설포라판을 자연적으로 섭취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1]



1. http://www.hopkinsmedicine.org/news/media/releases/chemical_derived_from_broccoli_sprouts_shows_promise_in_treating_au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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