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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민 Nov 13. 2019

글을 쓰는 이유

페미니즘, 외모 강박, 대상화, 자기혐오

 원래 알고는 있었지만 스치 듯 구독했다, 구독을 취소한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지난 9월 그 채널을 내가 다시 검색을 한 건지,

추천 영상에 떴는지 그 채널의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주제는 작가와의 대화였고, 그 작가는 '탈코 일기'라는 작품을 쓴 분이었다.

 20분가량의 영상이었는데 초반을 조금 보다가 멈추고 홀린 듯, 바로 그 책을 주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정신이었을까 싶었는데, 이런 일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날 책이 도착했고, 2권짜리 짧은 만화는 순식간에 읽혔다.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 이것이 사람들이 말한 '각성'이구나를 느꼈다.

작년에 이런 콘텐츠를 봤을 때는 남 이야기 었고, 유별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느꼈는데-

갑자기 내 이야기가 되고, 내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까지도 생각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그때는 사실은 알았지만 듣기 싫었던 걸까. 나를 둘러싼 안정적이라고 느낀 내 상황을 바꾸기 싫어서였을까.

어쨌든, 이런 '각성'상태, 이런 생각이 들고부터는.  

 처음에는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어색해지고, 내가 어색해졌다.

그리고 지금껏 내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 이질감을 느꼈고, 혐오감을 느꼈다.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나에 대한 외모 강박, 혐오, 자기 대상화가 철저히 이루어진 사람이었고,

그 대상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것들을 향해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인 나에 대한 혐오감이 느껴졌다.


 내가 일을 하는 곳은 만 3세부터 만 12세까지의 어린이들이 있는 곳인데 그 모든 어린이들,

여자아이, 남자아이 구분 없이(사실은 여자아이들에게 더 많이) 그들의 외모부터 내 머릿속에 입력이 되고,

이야기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얼마나 무책임하고, 편협하며, 끔찍한 일이었나.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위로를 하기에는

그 영향이 컸고, 나빴다.

 그리고 그런 생각, 말, 행동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늘 향해 있다고 생각하니 자기혐오가 더 심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대상화시키고, 내면보다는 겉모습을 하나하나 따지게 되었을까.

 각성 이후 내 모습을 그리다가 내가 정말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양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부분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손톱, 발톱 끝까지-

 무서웠다. 난 내가 아니었다. 난 곱슬 머리카락이었고, 제 멋대로 난 눈썹이었고, 굵은 발목, 뱃살이었다.  

 진짜 난 뭐였을까.

곱슬머리인 나는 늘 생머리인 아이들을 부러워했고, 털이 많았던 나는 늘 다리털, 발가락 털,

손가락 털, 팔 털을 신경 써야 했다. 쌍꺼풀이 없는 나는 그래도 눈이 크다며 안도했지만 쌍꺼풀이 있는 눈을

동경하기도 했다. 이런 것이 몸의 모든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왜 이래야 했을까.

 사회 구조, 사회 분위기, 문화, 미디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 때문이다.

나를 나로 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이 나를 둘러싸고 있고,

 내 외모를 향해 너도 더 다듬고, 더 "예뻐"지라고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나는 그랬던 과거의 나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랬던 과거의 나를 미워하고, 지우고, 욕하고, 애썼다.

 

한 한 달간은 매 순간이 자책과 자기부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서도 매일 아침 화장하지 않은 내 얼굴을 싫어하고 어색해하는 나에게 실망하고, 또 괴로워했다.

 (아, 책을 읽고 제일 처음 그 주 주말에 한 일은 머리 자르기였다.

남자 미용사가 하는 미용실에서 잘랐는데 진짜 자르겠냐는 말을 한 5번은 들었고,

그나마도 잘린 정도는 흔히 말하는 짧은 단발이었다. 지금은 귀도 팠지만. 사실 기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몇 달이 지난 지금은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내가 나를 혐오하게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며 누구나 다 그런 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그게 많은 경우 여자만이여야 하는지는 당연히 화가 나지만.)

 그리고 특히 동생에게 미안했다. 제일 가까운 사람의 부정적인 외모 지적이 그에게 얼마나 큰 슬픔과 좌절이 되었을까. 지금껏 날씬한 몸을 바라도록 만든 나는 미안하고 또 미안해한다.

아직은 말 못 했지만 언젠가는 과거의 내가 너에게 한 말에 대해 아주 반성하고 있으며 미안했다고,  

너는 너대로 너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는 언제나 사려 깊고, 밝고, 자신감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말해 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화장하지 않은 내 얼굴에 불만족스럽고, 가끔은 피부 화장도 하고, 앞머리는 고데기를 하며,

붕 뜬 내 머리보다 차분한 머리가 더 좋기도 하다.

 그런 나를 싫어하는 것도 여전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

또 여자라는 이유로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억울하고 화도 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사실은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돌아갈 수 없다.

 

거울을 보는 횟수를 줄이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여자들을 그만 보고,

힘을 얻을 수 있고, 큰 꿈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콘텐츠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남의 외모에 대해 최선을 다해서 말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대신 그 사람의 성격, 따뜻함, 말투, 행동을 더 많이 생각하고, 보기를 원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노력하고 있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안 해도 남이 남을 향해 말하고,

남이 나를 향해 말하고 대꾸하지 않아도 말하고 또 말한다. 나는 남이 내 외모에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는 말- '아무도 니 안 본다.'를 믿고 살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은 남의 외모에 관심이 참 많다.' 고 생각한다.

 여자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 만도 아니더라.

남자가 남자를 향한 관심보다 여자를 향한 관심이 더 많다고 해야겠지. 싫다.)

앞으로도 많은 내적 갈등과, 미디어의 공격, 주변인들의 말, 내 외모에 대한 평가, 흔한 외모 칭찬을 듣고

또 내적 갈등, 멈춤, 또 내적 갈등이 수 없이 많이 찾아오고, 지나가겠지.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앞으로 계속해서 생각하고 노력할 점을 찾아봐야 될 것 같다.


아,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다.

 생각만 하기에는 너무 머리가 복잡하고

 말도 안 되는 글이지만 글로 써낼 때 후련해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글을 읽고 함께 힘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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