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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민 Dec 16. 2019

내 장래희망은요.

때를 놓친 게으름뱅이의 고백

  나는 뭐가 되고 싶은가.

소위 말하는 장래희망말이다.

서른이 한참 지났는데 무슨 장래희망인가 싶지만 아직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또 하고 싶은 것도 없기 때문에 요즘 들어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내가 되고 싶은 게 있었던가.


 유년시절에는 정말 우습게도 저 어딘가 철학관 할아버지가 의사가 될 거라고 한 말을 듣고 막연하게 의사가 되고 싶었고, 강아지가 좋아 수의사로 살짝 틀었다가 공부를 좀 해보고는 의사는 역시, 나는 안 될 것 같아 접은 꿈이 되었다.

 그리고 나무가 좋아 조경사가 되고 싶었는데 조경학과가 있는 대학도 잘 없고 그마저도 있던 곳에 지원했다 떨어지고,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성적 맞춰 넣은 과에 합격해 거길 4년 동안 다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참 바보 같다고 생각되는 점은 합격한 과가 무슨 과인지도 모르고 등록을 했다는 것이다.

 대학 예비 소집에 가서야 거기가 화학공학과라는 것을 알았고, -그러면 과이름을 화학공학과로 표기할 것이지 무슨 생명이니, 뭐니 수식어를 왜 넣어 놓은 것인지 의문이다. 결국 내 탓이지만.-화학은 나름 좋아했으니 어찌어찌 다니면 되겠지 싶었다.

 다녀보니 내가 좋아한 것은 순수 화학이었고 화학공학은 전혀 다른 학문이었다. (전혀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절대 같은 학문은 아니다.)

 공학이라는 말 하나 붙었을 뿐인데,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수업들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에는 알아듣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서야 그건 알아들은 게 아니라 알아들은 척을 했던 것임을 알 게 되었다. (‘알아듣는 척’이라는 게 수업시간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점은 휴학도 없이 졸업학점을 다 채우고, 졸업을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겨울방학 때 학점을 채우기 위해서 ‘기초 중국어 회화’ 계절학기 수업을 들은 것은 참, 어디 가서 말하기도 창피하다.- 그렇지만 다 말하고 다닌다.)

 그렇게 얻은 화학공학사 졸업장은 그에 걸맞은 제대로 된 쓰임을 한 번도 하지는 못했지만 여차저차 대졸이라는 증명 정도는 해 줌으로써 나는 대졸자가 되었다.

 

 아! 그리고 졸업하자마자 가지게 된 꿈은 여행사 취업이었다. (하고 싶은 게 있었군.)

 당연하게도 대학시절 딱 한 번 가본 일본 여행과 내일로 기차여행으로 나는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직관적 이게도 ‘여행을 좋아하면 여행사지!’ 하는 공식을 잘도 적용했다.

 나도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어른이 될 것만 같고, 인간으로서 구실을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나름 타 지역에까지 가서 이름도 생소한 여행사 오퍼레이터 양성과정이라는 과정을 백몇만원 들여 이수하고, 수료증을 받음으로써 박봉의 여행사에 취직을 성공하게 된다. -수료증이 없어도 여행사 취업은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무럭무럭 성장해 여행사 사장이 되었다면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2년 남짓 일한 곳에서는 연봉 1300만 원, 퇴직금으로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받고 그만뒀고, 근 몇 달 동안 사장에게서 오는 다시 일하러 오라는 연락을 ‘그래도 내가 일은 잘했나 보다.’하는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고 보면 여행사 취직의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겠다.


 아! 그리고 또 꿈이 있었다.

플로리스트.

 식물을 좋아하긴 했나 보다.

 여행사를 그만두고 누구나 다 한 번쯤은 생각해 본다는 쇼핑몰 창업을 집적거리다 돈 날리기 전에 급히 접고 취업 성공 패키지를 이용해서 이번엔 다행히 공짜로 화훼장식 기능사 ‘국가’ 자격증을 딴다. 그리고 꽃 도•소매상에서 일도 잠깐 하게 된다.

 여기서는 도망치듯 그만뒀다. 임금은 당연히 최저 임금이었고, 하필 내가 일한 그 기간이 학교 인사이동이 있는 때라 매일 ‘난’만 몇 백 개씩 화분에 심고 쌓고 심고 옮기고를 반복했다. 난이 예민한 식물인 줄 알았는데 막 심던데요? 사무실이나 교무실에서 애지중지 물 주고 닦아도 다 죽는 이유가 애초에 막 심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었다..(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회장실만 멀쩡했어도 좀 더 다니지 않았을까 의미 없는 가정을 해본다.


 어찌어찌 먹고살려고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제일 오래 일했다. 월급도 지금까지에 비하면 제일 많고, 환경도 지금까지는 참을 만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제 와서 내 꿈을 생각하며 그만둘지 말지를 고민하는 건가.

 이곳이 내 인생의 마지막 직장이 아니며 이 직업도 마지막 직업이 될 수도 없다. 내 경력에는 과목도 없는 학원강사 한 줄만이 남을 뿐이다.

차라리 수학을 계속 가르쳤다면 수학강사 경력이 쌓였을 테고, 영어를 가르쳤어도 그에 맞는 하찮은 경력이나마 생겼을 텐데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었다.


 여기서 계속 생각하는 질문은 ‘뭘 해야 돈을 버는가, 뭘 해야 내 경력에 도움이 되는가?’ 더 나아가서는 ‘내 꿈은 무엇인가?’다.

 결국 ‘아!! 내 꿈은 이거야!’하는 후련한 정답은 나오지 않을 것을 안다.

여러 차례 답하고 생각해본 결과, 난 마냥 꿈을 꿀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먹고살아야 하니 그에 맞는 돈도 벌어야 하고, (사실 돈이 제일 문제겠지.)

나 혼자라면 어떻게든 있는 돈으로 지지고 볶아 보겠는데 딸린 식구이자 눈치 보이는 식구도 있고, 간단하지가 않다 이 말이다.

 늘 이기적이라 생각했던 내가 남을 생각하고 주저하고 있다니, 자신감이 없는 탓인지, 양심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흔히 말하는 꿈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는 시기에 게으름을 부리고, 책임지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책임지고 내 인생을 꾸려야겠구나.

 다음에는 내 장래희망을 찾아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실현 가능성이 0%든 일단 질러보는 내가 되어 글을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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