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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민 Aug 20. 2020

무직자가 되었다.

 백수 한 달 차~반년 차 : 의식의 흐름

 결국 일을 그만뒀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라 놀랍지는 않았지만 앞으로의 일이 막막한 것은 당연한 순서다. 

(코로나 19 사태 때문에 내가 일하는 업계는 당분간은 다들 휴업상태라 다른 선생님들도 나랑 비슷한 상황이긴 하다. 보통 여기서 일을 그만두고 한 달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는 학부모들이나 인수인계한 선생님들한테 연락을 받기 마련인데 지금은 모든 업무가 정지되어 있으니 나는 연락이 오지도 받지도 않고 있다. 개학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동안의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기록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쓰고 6개월이 지나고 있다. 

으악.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처음 한두 달은 어쩐 일인지 일을 할 때보다 마음에 여유가 더 없었던 것 같다. 

매일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일기 쓰고, 하루 할 일 정리하고, 그 기록에 맞춰서 보내려고 했다. 청소, 빨래, 간단한 요리하기, 밥 먹기.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살아가려면 꼭 해야 하는 일들인데 기록하고, 해내려고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딘가 거북해졌고, 거기다 집에서 하는 운동까지 끼워 넣으니 뿌듯하긴 한데, 내가 나를 너무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난 분명히 집에서 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휴식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인지 피부가 얼굴이며 두피며 전에 없었던 정도로 트러블이 심해졌고, 잠도 일찍 일어나니 일찍 자긴 하는데 새벽에 자꾸 깼다. 그래서 먹는 것이 문제인가 싶어 최대한 조절도 해보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해 봤다. 이런 것들이 내가 나를 들볶았던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다음에 할 일을 정하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는,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이직할 때 한 두 달 정도는 쉬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고, 올 한 해를 그냥 안식년이라 여기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라는 게 참 무섭다. 이렇게 마음먹고 살아가는 것과 저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이리도 다르니 말이다. 

요즘도 가능하면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운동을 한다. 최근에 하고 있는 운동은 요가인데, 유튜브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서 지금 같은 시대에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감사히 배우고 있다. 

 

- 요가는 예전에도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이유는 당연하게도 '몸무게' 때문에, '다이어트'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요가를 다시 접하면서 느낀 점은 이게 단순한 운동이라기보다 마음과 신체를 다 단련해 주는 수련이었다. 그래서 '요가 수련'이라고 하나보다. 

 처음에 할 때는 동작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이렇게 집중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인지 드디어 알게 됐다.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구나 싶기도 했고. 

 당연히 하루하루 하면서 다른 생각하는 게 줄었다. (하긴 한다.)  자세를 하나하나 해 가면서 발전하는 나를 지켜보는 것도 좋고, 내 호흡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다. 

  



 그냥 집에서 놀면 걱정도 없고 마음도 편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당황하기도 했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데 굳이 굳이 할 일을 찾아서 하려는 나를 보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영어공부라도 좀 하지 싶다가도 너무 하기 싫어서 또 한 번 마음이 괴롭다가. 될 대로 돼라 했다. 

인스타그램에 수영 일기를 그려 올리고 있는데, 수영을 못 가니 그릴 게 없다가, 수영장 문을 열어서 수영을 다니기 시작하니 또 그리기가 싫어서 난리 난 나를 보니 참 이건 미친놈인가 싶기도 했다. 

 

-아, 수영도 가기 싫다. 이제 수영은 배운 지 1년 정도 됐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수업이 줄어서 내가 듣던 반이 없어졌다. 그래서 최대한 끼워 맞춰서 선생님한테도 물어보고 어찌어찌해서 연수반에 등록을 했는데, 아마 이 수영장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반인 것 같다. 어휴.. 몸풀기부터 따라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다들 따라가다 보면 실력도 체력도 는다고 하는데 난 이렇게 느는 건 안되나 보다. 너무 가기 싫다. 그래서 이번 주는 한 번도 안 갔다. 주 7회 수영하던 내가 이럴 수가 있나 싶지만 싫은 건 진짜 못하나 보다. 그래서 다음 달에 혹시라도 수영장이 문을 안 닫고 운영된다면 내 수준에 맞는 반으로 등록해야지. 


 여름휴가도 갔다 왔고, 바다에서 해수욕도 했고,  이렇게 보니 벌써 8월도 끝나고 있구나. 

조금만 더 놀면서 앞으로 살 일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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