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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동안 약 40번의 커피챗을 하게 된 사연

by 마케터 임지은

2022년 연말, 퍼블리를 퇴사했다.


완전한 자의가 아닌 외부 영향이 큰, 조금은 급작스러운 퇴사였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자유의 몸이 되었기에 다음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정말 많았다.


기존에는 이직을 결정하는 것이 온전히 '나' 중심적이었다. 퍼포먼스마케팅을 하다보니 브랜드마케팅에 갈증이 생겼고, 스타트업에만 있다보니 큰 조직을 경험해보고 싶었고, 실무자로 경험을 쌓다보니 리더의 무게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와 같이 나의 니즈를 채우기 위해 이직을 했다. 다음 회사에 대한 기준과 조건이 명확했고, 원하는 단 하나의 회사를 정해 절차를 밟고 이직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개인적인 갈증보다 내가 더 잘 쓰일 수 있는 조직이 어디인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이 난생 처음인지라 당혹스러운 마음에 주변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자 "지은이 너도 때가 됐구나"라며 웃으시더라는건 안비밀. (사람 다 똑가타..)



하지만 어느 회사에서 나의 경험과 리소스가 더 의미있게 쓰일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여러 회사를 만나보며 다음을 결정하기로 했다.


내가 잘 쓰일 수 있는 곳을 찾으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나의 10년 커리어 회고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커피챗을 공개 모집했다.


여러번 퇴고를 거친 끝에, 12월 5일 밤 11시가 넘어서야 글을 업로드 할 수 있었다.


image.png?type=w1 https://brunch.co.kr/@imjieun90/34



30분 넘게 잠잠한 반응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아무도 내 글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어떡하지?


글을 올리고 1시간 정도 지난 12월 6일 00시 43분, 첫 커피챗 신청 메일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임지은님, 확정이 필요한 예약이 있습니다."


글을 올린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약 3주간의 커피챗 구좌가 풀부킹 되었고, 마감 후에도 밀려드는 요청에 추가 일정까지 오픈해야 했다. 이는 즉, 내가 4주동안 일평균 2~3개의 미팅을 소화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극내향인 ISTJ 마케터인 나에게, 공개적으로 FA를 선언하고 일면식도 없는 분들과 대면 미팅을 진행한다는 것은 꽤나 큰 도전이었다. 그만큼 넥스트 스텝을 잘 정하는 것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40명 넘는 분들이 커피챗을 신청한 이유는 다양했다.

내게 입사 제안을 하려고 신청한 분도 계셨고

그저 임지은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분도 계셨고

커리어 고민이 많아서 나와 대화해보고 싶었던 분도 계셨고

현 회사의 마케팅에 조언을 구하려던 분도 계셨다.


만나는 분들마다 회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공유해주시고, 더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점이 매우 많았다. 무엇보다 내 경험과 생각을 말로 뱉으면서 내가 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나 가치관이 뭔지 정리되는 것이 가장 의미있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간의 경험이 다른 회사에는 중요한 인사이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 것 또한 큰 수확이었다.



40개 넘는 커피챗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커피챗은 Y사의 CEO, J님과의 티타임이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무려 2시간을 일 얘기로 꽉 채웠는데(처음 뵙는 분과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마지막쯤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은님, 다음 회사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실 건가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일단 1월까지 회사를 선택하는 저만의 기준을 정립하고, 만나본 회사들을 스프레드시트에 쭉 정리해서 그 기준에 따라 스코어링 해보려고요. 그 중에 점수가 높은 회사를 가면 되지 않을까요?”


이 말을 들은 J님은 자신도 창업하기 전 마지막 다닐 회사를 결정할 때 시장 규모, 매출액, 투자금 등의 요소로 점수를 매겨서 선택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회사가 있었지만 여전히 고민이 되어 자신의 멘토에게 피드백을 부탁했는데, 그때 그 분이 딱 한 마디 하셨다고 한다. (정확히 이 문장은 아니었지만 메시지는 이러했다)


“저는 사람(창업자) 하나만 봅니다.
시장이 어떻고 매출이 어떻고 내가 보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면
회사에 갈 게 아니라 투자자 해야죠.
그게 아니라면 같이 일 할 사람이 어떤지 잘 보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 말이 내게는 꽤나 임팩트 있었고, 실제로 내가 다음 회사를 선택할 때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약 40번의 커피챗을 마친 후 느낀 감정은 "감사" 였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볼 수 있는 내 커리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는 분들과 일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 자체가 매우 감사하고 즐거웠다. 때로는 나까짓게 뭐라고 마케팅이 어쩌구저쩌구 이런 얘기들을 떠들고있나 싶기도 했지만, 매 순간 진심을 다해 나의 생각을 전하고자 했던 마음가짐으로 위안을 얻었다.


또한 나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던 건 결국 혼자의 노력이 아닌 내가 지나온 모든 회사와 사람들의 덕분이었다는 생각에, 나와 인연이 닿았던 모든 회사와 사람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러 고민 끝에 다음 회사를 결정했고, 한 달간 커피챗을 진행한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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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직도 이직이지만 '나의 경험과 지식이 흩어지기 전에 주변과 나누기 위해' 커피챗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나눈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았다. 나의 커리어를 높게 평가해주고, 나라는 사람에게 함께하자고 손내밀어주는 사람들을 직접 만날 일이 살면서 그리 많지 않은데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분들께 칭찬과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성장한다.

이 때를 계기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성장의 발판이 되는 존재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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