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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Aug 30. 2022

참기름과 Vara bow

열린 창문으로 들이치는 바람이 매섭다. 방충망 사이를 악착같이 뚫고 바깥 기운을 집 안으로 부어 넣는다. 새벽녘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일기예보대로 하늘도 물을 뿜어낼 준비를 하는 듯하다. 스콜(squall). 열대 지방에서 갑작스레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뜻하는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부터 낯설지 않게 되었다. 십여 년 전, 신혼여행으로 간 발리에서 처음 겪어본 스콜을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국지성 집중 호우로 때마다 수해가 발생할 정도다. 6월 말부터 뚜렷했던 장마철은 그 기간도 단어도 점차 사멸하는 듯하다. 장마철이 가면 무더위와 태풍이 오는 것이 여름인 줄 알았는데 동남아의 ‘우기’라는 단어가 점점 익숙해진다. 


몇 해 전,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대구에 있는 엄마 집에 갔었다. 친정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안 걸리지만 나는 운전을 못한다. 그동안 운전 불가를 이유로 혼자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제법 컸고 방학에 집에만 있을 바에는 모험을 해보자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2박 3일의 일정, 짐을 줄이기 위해 여벌 옷은 하나씩만 챙겨 각자의 가방에 싸도록 했다. 저녁에 그날 입은 옷을 빨아 널고 아침엔 전날 밤 입은 잠옷을 빨아 널자는 계획을 머릿속으로 모의실험했다. 여름 햇살을 믿고 세운 계획이었다. 여행지에서 날마다 장소마다 옷을 바꿔 입는 것이 취미인지라 간소한 옷가지가 섭섭했지만, 남편 없이 두 아이와 반드시 걸어야만 하는 길들이 산재한 여정에서 무거운 옷가방은 곤란한 짐이었다. 


대망의 모험일, 시간 맞춰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려 구미역에 도착했다. 곧바로 부산행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35분 뒤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시내버스와 기차의 시간이 딱 맞아떨어져 집을 나선 지 100분 만에 대구에 도착하는 쾌거를 이뤘다. 테트리스처럼 맞춰진 대중교통 시간과 감당할 만한 짐 가방, 대도시 구경이라는 삼박자가 흥을 돋웠다. 역에는 엄마와 외할머니가 나란히 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들의 휴가에 맞춰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초대한 것이었다. 팔순의 할머니가 상주시 사벌면에 있는 집에서부터 상주 시내로 가는 버스를 시간표에 맞춰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동대구역까지 오는 시외버스를 타는 긴 여정을 오롯이 혼자서 해낸 것이었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외할머니의 모험은 나와 아이들의 모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결혼하고 구미에서 산 지 십여 년. 대구는 많은 것들이 변했고 그만큼 낯선 도시가 되었다. 대도시는 현란했다. 기차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을 품은 백화점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기껏해야 대형마트가 다인 소도시 시민인 나와 아이들은 작은북처럼 동동거렸다. 백화점에는 온갖 브랜드 매장과 유명한 음식점들이 입점해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화려한 것들을 둘러보기 전에 대도시까지 오느라 주린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고심 끝에 들어간 곳은 홍콩에서 가장 맛있는 딤섬으로 선정되었다는 딤섬 전문점. 아이들과 외할머니의 입맛을 두루 맞출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들어간 식당에서 그 결과는 참담했다. 면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주문한 ‘완툰탕면’과 이른 점심을 먹어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는 엄마와 외할머니를 위해 주문한 갖가지 딤섬들. 잔치국수를 좋아하는 아이는 꼬들꼬들한 계란면을 낯설어했고, 가지 두 조각에 다진 새우가 끼워진 가지딤섬의 가격이 개당 1800원이 넘는다는 사실은 외할머니의 젓가락질을 멈추게 했다. “밭에 널린 게 가지인데. 가방에 한가득 가지인데.” 그제야 외할머니 옆에 한 사람분의 자리를 차지한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동동거리던 흥은 어느새 잦아들었다. 화려한 물건들을 구경할 새도 없었다. 아이들은 장난감 코너가 아닌 곳에는 흥미가 없었고, 외할머니는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졌다. 범인은 식당에서 한 사람분의 자리를 차지했던 화려한 무늬의 나일론 가방. 대체 뭘 가지고 온 거냐며 가볍게 낚아챈 가방은 손목을 뚝 떨어뜨렸다. “돌이라도 싸 온 거야?” 나일론 가방의 지퍼를 열자 신문지에 돌돌 만 참기름 두 병, 가지 여덟아홉 개, 깻잎 한아름이 보자기에 고이 싸여 있었다. 3000원만 주면 깻잎쯤 어디서든 푸지게 산다고! 심장이 캐스터네츠를 두드리는 것처럼 시끄럽게 뛴다. 이래서야 서랍 안에 아껴 두었던 백화점 상품권을 꺼내 온 의미가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외할머니에게도 대도시 백화점의 세련된 음식을 맛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등을 졌다. 


식어버린 백화점 구경은 그만두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외할머니, 엄마, 나, 딸아이 모녀 4대와 아들 녀석까지 다섯 명. 한 택시에 옹기종기 끼여 탈 수 없는 인원수에 엄마는 걸어가자고 했다. 백화점에서 엄마 집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설상가상으로 백화점 출구에 가니 폭우가 쏟아졌다. 그해 여름 심심치 않게 찾아오던 국지성 집중 호우였다. 할머니와 아이들이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됐지만, 불친절한 택시기사에 공포증이 있는 나와 택시비가 아까운 엄마는 걷기로 결정했다. 폭우를 뚫고 나서기 전에 선결과제가 있었다. 외할머니의 짐을 분산시켜 부피를 줄이는 것. 비에 노출되는 짐의 면적을 줄여야 했다. 가지와 깻잎은 엄마 가방에 쑤셔 넣고 참기름은 내 가방에 넣기로 했다. 참기름의 안전을 위해 내 가방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렸다. 참기름 병이 자칫 깨지기라도 하면 가방은 어쩌란 말인가. 내키지 않았지만 피할 도리가 없었다.


참기름 병은 가로 25cm, 세로 20cm, 너비 13cm의 직사각형에 Vara bow 모양의 리본띠가 고아하게 둘러진 ‘뉴 바라(new vara) 토트백’에 넣어졌다. 그 전해 여름이 지날 무렵 이 백화점 5층 명품관에 있는 F 브랜드 매장에서 산 가방이다. 그날이 지금도 선연하다. 여름이 지날 무렵의 휴일, 마땅한 나들이 장소가 없어 얼떨결에 온 가족이 대구의 백화점으로 총출동한 그날, 일은 발생했다. ”여보, 가방 사.” “왜 이래?” “지금 아니면 못 살 거 같아. 사.” “알아본 것도 없는데 갑자기 어떻게 사?” “구경해보면 되지.” 시시때때로 ‘명품 가방 사 줘’를 주문처럼 읊어 댔지만 시계태엽 감듯 주기적으로 울리는 소리일 뿐 정작 명품 브랜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유명한 샤넬, 루이뷔통, 프라다, 구찌의 로고 정도는 알지만 각 브랜드의 상품에 무지하므로 로고가 박혀 있지 않으면 제아무리 샤넬인들 알아볼 리 만무하다.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어도 어떤 명품 브랜드인지 모르는 게 태반이다. 옷을 좋아해 물욕이 그득하지만 욕망의 품목마다 나름의 온당한 상한선을 그어 두었다. ‘명품 가방’은 그 온당함을 뛰어넘는 것이므로 구매의 대상도 욕망의 대상도 아니었다. 스님처럼 물욕을 무소유한 남편은 빈티지한 별 모양으로 유명한 고가의 운동화를 자랑하는 지인에게 ‘나이키야?’라고 순일하게 물어 자랑하던 이를 허탈하게 했다. 나와 남편은 일종의 ‘명품 문외한’이다.


문외한들이 호기롭게 들어간 명품관은 넓고 또 높았다. 반짝거리는 가방들은 우리 가족의 한 달 치 생활비를 웃돌았다. 300은 겁보가 결코 넘지 못할 높이의 허들이었다. 작고 비싼 것들에 선뜻 손을 뻗지 못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블랙 리본. 군더더기 없이 뻗은 안정적인 직사각형. 부드러운 카프 스킨. 탑 핸들과 스트랩이 모두 달린 2 way 형식. 일상 소지품과 책 한 권이 들어갈 만한 크기. 300만 원을 상회하는 여타 가방들의 절반 가격. 클래식한 디자인과 리본의 여성스러움에 마음은 이미 기울었다. 손에 들고 어깨에 메 보고 거울에 비춰보는 과정은 꿈결같이 지나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빨간 쇼핑백을 들고 차 문을 열고 내리는 중이었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른쪽 옆구리에 담이 결렸다. 겁보가 준비운동 없이 한 달 치 생활비의 절반이라는 허들을 뛰어넘다 얻은 결과였다.


높이뛰기 같았던 그날의 가방에 참기름을 넣고 우산을 폈다. 칼같이 들이치는 빗물에 우산은 무용지물이었고 신발은 진작에 다 젖었다. 모녀 4대가 짐을 싸 들고 걷는 길은 태풍을 등에 업은 피난길 같았다. 절반 정도 걸었을 때 외할머니는 욕을 하셨다. 빗소리를 뚫어내는 차진 욕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은 곧바로 욕실로 떠밀려 들어가 씻었고 외할머니는 구겨진 깻잎을 하나하나 펼쳤다. 나는 참기름의 안위를 확인하고 마른 수건으로 가방을 닦았다. 참기름은 무사했다. 엄마는 아이들의 운동화에 신문지를 구겨 넣었다.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저마다의 손끝에서 물결이 출렁인다. 사방에 떨어진 물방울을 닦아내고 신문지를 펼쳤다. 나는 삼겹살을 구웠고 엄마는 뭉텅뭉텅 썬 깻잎에 부침가루를 섞어 전을 부쳤다. 외할머니는 가지를 또각또각 썰었다. 외할머니가 썰어준 가지를 삼겹살 옆에 나란히 굽다가 가지와 가지 사이에 고기를 한 점 끼우고 참기름장을 뿌렸다. 집에서 뚝딱뚝딱 만들어낸 익숙한 깻잎전과 삼겹살 가지딤섬으로 집 안의 공기가 녹진해졌다.


방충망이 덜컹거릴 정도로 들이닥치던 바람이 잠시 숨을 고른다. 비가 오기 전에 창문을 미리 닫아 두려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내딛는 발바닥에 흙이 밟힌다. 바닥이 온통 흙덩이다. 창문 앞에 나란히 줄 세운 화분들의 흙더미들이 바람에 날려 온 집 안에 퍼졌다. 아침에 물을 주고 정리했던 참이라 방심했다. 바람은 젖은 흙도 말려 날릴 만큼 강했다. 그해 여름의 폭우도 대단했다. 빗속을 걸어 엄마 집에 도착했을 때 푹 젖은 구두의 리본이 떨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참기름은 리본 가방 안에서 안전했다. 그해 여름 나와 엄마와 외할머니와 아이들의 특별했던 휴가는 이튿날부터 맑게 갰다. 구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가방은 제쳐 두고 참기름 병을 곡진하게 안아 들었다. 보자기에 싸온 여름 나물들을 고이 펼치던 외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하기 위해서. 비 온 뒤 씻긴 하늘처럼 제 모습을 오롯하게 드러내는 것들을 알아보기 위해서. 


오늘밤 곧 내릴 이 비가 피해 없이 다만 올여름의 마지막 더위를 사르기만을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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