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반짝 Jul 01. 2022

출렁다리에 뿌려진 맛소금

흔들리는 불혹


공기에 살얼음이 낀 듯한 날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눈이 올까요. 눈이 귀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내릴 듯 내리지 않는 눈이 야속합니다. 오늘밤에는 전국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바깥을 살피지만 역시나 눈이 야박한 고장입니다. 일기예보가 거짓인지, 까만 밤이 먼지처럼 흩날리는 눈을 덮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의 눈은 쩨쩨하다는 것입니다. 순백의 겨울 세상을 보지 못 하고 이대로 새해를 맞이하려나 봅니다.


이번 새해는 마흔을 싣고 옵니다. 마흔. 사십. 불혹. 어떻게 써도 와닿지 않습니다. 어쩌면 가닿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요. ‘나는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고 샤넬 가방도 없는데 죽을 수 없잖아.’ 죽음에 관하여 지인들에게 말하던 우스갯소리 속 마흔이 코 앞에 왔습니다. 쓱 들이켜면 쑥 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마흔이라니. 더 이상 ‘2030’에 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젊은 엄마’가 아닙니다. 더 이상 ‘새댁’이라 불리울 수도 없지요. 오히려 막 새댁이 된 복숭아 같은 이들에게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삶의 지혜를 한 잔씩 나눠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정월 초하루 사이의 기이한 일주일은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속 같다. 지난해가 끝났지만 아직 새해는 시작되지 않았다.’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 속 표현처럼 이 기이한 일주일은 해마다 우리의 마음을 붕 뜨게 합니다. 하물며 이 일주일 사이에 한 살을 더 쌓을 뿐인데 세대가 통째로 바뀐다는 것은 여간 심란한 것이 아닙니다. 30대가 끝났지만 40대를 시작하지 못하고 괄호 속에 갇혔습니다. 다만 오늘밤에도 오지 않는 흰 눈이 제 가르마 위로 소복이 내렸습니다. 까만 종지에 가지런히 쏟아 놓은 맛소금 같습니다. 온 마음으로 거부해도 몸은 이미 마흔을 받아들였나 봅니다.


마흔이 이토록 아득한 것은 생의 반을 지나오도록 이룬 것이 없다는 비루함 때문일 것입니다. 생을 가로지르며 나열할 것이 없는 무용한 삶.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아 불혹이라고 한다는데 저의 마흔은 어째서 출렁다리일까요. 지극히 애달픈 마음으로 불혹 전에 이루고 싶은 것들의 버킷리스트를 써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시시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지만 ‘불혹 전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를 끄적여 봅니다. 자전거 타기. 동그란 바퀴가 달린 것을 움직이게 하지 못합니다. 자전거의 도시에서 태어나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운동장의 흙먼지를 마셨지만 성공의 축배는 마시지 못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롤러장에 갔지만 친구들의 가방을 지키거나 몇 살은 어린 초등학생들과 자물려 방방 위를 배회하곤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으레 운전면허를 따고 2번의 면허 갱신을 거쳤지만 여전히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의 위치가 헷갈립니다. 바퀴 달린 것은 캄캄한 밤에 혼자 눌리는 가위입니다. '바퀴귀신'이 어깨 위를 밟고 올라서 내려다보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지난여름, 한평생 어깨를 짓누르던 '바퀴귀신'은 아홉 살 난 아들의 말 한 마디로 퇴치되었습니다. ‘엄마, 바퀴는 내가 신경쓸게. 엄마는 앞만 집중해. 핸들을 잡고 발을 빠르게 돌리는 거야.’ 서른아홉의 여름, 온몸으로 자전거를 잡아주는 선생님을 만난 저는 두 발을 땅에서 떼고 자전거의 바퀴를 굴렸습니다.


온 가족이 마주앉아 흰 눈이 펑펑 내리길 기다립니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불혹 전 버킷리스트’ 한 가지를 해 보았습니다. 숟가락으로 맥주병 따기. 그동안 세 상자째 시도했지만 마음뿐 아니라 손가락 지렛대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여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피시시시시식 소리를 내며 병뚜껑의 톱니 두 개가 열렸습니다. 탄산이 빠지며 김이 새 나갔지만 기분까지 김샌 것은 아니었어요. 맥주가 저를 향해 피식 웃는 것 같았습니다. 비웃음이 아니었습니다. 무용한 일에도 순일하게 진심을 쏟아붓는 아이를 무한하게 기다려주는 엄마 같았습니다.


결국 흰 눈은 야속하게도 오지 않았습니다. 흰 눈을 보지 못 한 채 마흔을 맞이했습니다. “엄마. 엄마만 마흔이 아니야. 나도 이제 열 살이야. 나도 십 대가 됐다고!” 생각지도 못한 동지의 출현입니다. 숟가락으로 맥주병 따기처럼 무용하지만 진심인 일들을 고요히 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흔들리지 않고 뚜껑을 활짝 열 수 있겠지요. 청아한 ‘뻥’소리를 낼 그날을, 흰 눈이 뒤덮인 순백의 그날을 동지와 함께 기다려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기름진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