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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볼을 흔들면

by 임유진

몇 해 전 여름이었다. 청첩장을 돌리러 신부와 함께 고향에 내려온 대학교 동기를 시내의 술집에서 만났다. 장성한 자식을 뒤늦게 결혼시키는 듯한 애틋함과 축하하는 마음이 부딪치는 잔들 사이로 오갔다.

“축하해. 이 녀석 다 컸네. 장가를 다 가고.”

“집은 구했냐? 서울은 집값이 장난 아니잖아.”

“이번에 분양받았어.”

“다행이네. 내가 아는 사람은 신혼부부 특공 때문에 혼인신고를 6년이나 미뤘대.”

“무주택자 내 집 마련이 쉬운 게 아니지.”

신혼부부 특공? 경찰특공대 같은 특공? 이 특공이 그 특공이 아닐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지만, 친구들의 대화 속 단어들이 어쩐지 암호처럼 들렸다. 평범한 이들의 꿈의 종착지라고도 할 수 있는 내 집 마련. 나는 과연 ‘내 집 마련’을 이룬 것일까?


결혼하기 전 ‘내 집’은 부모님과 함께 20여 년을 살았던 ‘황실빌라’이다. 저마다 ‘내 집 마련’이 가훈이던 시절, 내 부모가 서른 중반에 제 부모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황실빌라는 사과의 도시에 자리한 18평의 4층 빌라이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던 그 집에서 나는 초, 중, 고,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공업도시로 오게 되었다. 그때까지 부모님 등에 업혀 무엇 하나 스스로 생산한 적 없었던 나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편의 결혼 준비 과정은 어린이집 소꿉놀이 같았다. 나는 혼수 준비라는 명목으로 황실빌라에는 없는 빈티지 그릇과 가구, 꽃무늬 이불을 만져보며 내 취향에 눈을 떴고, 면사포를 온몸에 두른 것처럼 결혼에 한껏 취했다. 그러나 면사포는 그것들의 가격표에 붙은 동그라미의 개수에, 빈티지 침대의 크기와 입본장의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데 방의 크기가 우선이라는 조건에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돈과 관련되었다는 현실에 면사포는 훌렁 발밑으로 떨어졌다. 취향은 결코 현실을 등질 수 없다. 현실 속 결혼은 곧 ‘내 집 마련’이었다. 부모님의 표어가 내게로 상속된 것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사회책 속 ‘공업도시’에서 살 집을 알아보려고 공인중개사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소꿉놀이 취기가 남아 있었다. 월세, 전세, 매매의 개념보다 ‘삭월세’가 아니라 ‘사글세’, ‘월세방’과 ‘사글셋방’이 올바른 표기라는 맞춤법이 더 중요했던 학생 시절에 머물러 있는 머릿속은 ‘신혼부부 전세대출’의 방점이 신혼부부에 찍혔다. 신혼. 부부. 나는 신부. 이런 단어들이 면사포같이 드리워 그때까지도 현실 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와 남편은 외벽의 칠이 까지고 군데군데 낙수 자국이 있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아파트 단지 앞에서 공인중개사를 만났다. 공인중개사는 이곳이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집이라며, 요즘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좋은 층수가 나왔다며 공동현관문을 밀며 들어섰고, 우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판에서 흘려보았던 이야기들을 주워 담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6층쯤이었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양쪽으로 현관문이 하나씩 있었다. 공인중개사가 벨을 누른 집 문 앞에는 세발자전거가 놓여 있었고, 웃는 엄마인지 우는 엄마인지 헷갈리는 그림이 붙어 있었는데, 나와 남편이 그 표정의 진위를 유추하다 ‘귀엽다’라는 말로 마무리 지을 때까지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 안 열어주네… 주인은 그냥 열고 들어가라고 하긴 했는데….” 공인중개사는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다가, “여기 말고 옆 동에도 전세가 하나 있는데 여기랑 구조는 같아요. 거기로 가시죠.”라고 했다.


문을 안 열어주는 것은 무엇이고, 그냥 열고 들어가라는 말은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엄마의 얼굴 그림과 세발자전거를 귀엽다고 여긴 것이 어쩐지 물색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옆 동으로 옮기는 세 사람의 발걸음은 다소 옹그린 데가 있었다. 다음 집의 현관문 앞에 서자 어쩐지 가슴이 쿵쾅거렸다. 다행히 그 집의 문은 가붓이 열렸다. 우리는 “실례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현관에 들어섰다. 집은 현관에서 모든 방의 방문과 거실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다. 오른쪽 방과 부엌 쪽으로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두 아이가 내복 차림으로 뛰어다녔고, 왼쪽 거실의 소파 아래에 런닝 차림으로 기대어 앉은 아이들의 아빠는 “뛰지 마!”라며 아이들을 호통했다. 실례한다는 가붓한 인사는 그들에게 정말로 엄청난 실례 같았다. 우리는 구멍 난 양말을 신은 사람처럼 곱은 발로 집 안을 둘러보았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그 시간 동안 그들에게 우리는 끝내 투명 인간이었다. 또한, 타인의 생활 속으로 함부로 발을 디밀고 꼬질꼬질한 때를 묻히는 무람없는 불청객이었다.


스노우볼을 흔들면 스노우볼 속 집 위로 눈이 축복처럼 내려앉는다. 스노우볼 안은 언제나 화이트 크리스마스. 축복이다. 나는 스노우볼 속 집을 갖고 싶었다. 단단한 막 안에서 끊임없는 축복이 내리는 집. 그러나 전셋집 구하기는 공인중개사의 말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마땅한 전셋집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바에는 조금 무리해서 신축 아파트를 매매하라는 친척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입주가 한창인 아파트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득하게 들어찬 타인과 사물이 전혀 없는 텅 빈 공간은 고결해 보였다. 천연 대리석과 타일을 구별할 줄 모르는 눈에 반짝이는 거실 바닥은 순결한 대리석 같았다. 너른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넉넉했고, 화장실이 두 개라는 것은 부잣집같이 느껴졌다. 다시 면사포가 드리워졌다. 남편의 이름으로 주택담보대출과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그 집을 사고, 내 부모님의 등골을 뽑아 혼수를 마련했다. 둘이 살면서 열심히 갚을 수 있을 거라는 환상 같은 다짐을 하면서 우리의 스노우볼 속 집을 마련했다. 그런데 결혼식 한 달 전에 미리 찾아온 아이로 인해 ‘둘이 열심히’ 일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남편 혼자 열심히 일하고 나는 반짝이는 거실 바닥에 가만히 누워 혼자 열심히 입덧의 나날을 치렀다.


스노우볼 속 축복을 꿈꾸며 크리스마스에 결혼식을 올렸다. 다행히 토요일이어서 하객들에게 민폐를 조금 덜었다. 철없는 환상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랐지만, 눈 대신 한파가 찾아왔다. 어깨를 훤히 드러낸 드레스는 보는 것만으로도 콧물이 흐를 것 같았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공업도시로 돌아오니 새해였고 추위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다. 새 아파트의 반짝이는 타일 바닥은 몹시 찼다. 발끝이 아릿하고 이내 몸 전체가 시렸다. 그럼에도 바닥을 충분히 데울 수 없었다. 전에 본 적 없는 전기요금, 수도요금, 도시가스요금, 아파트 관리비, 자동차세, 보험료, 대출 원리금까지 각종 고지서가 연하장인 양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보일러를 돌리는 대신 베이지 빛깔의 털이 뭉쳐진 러그를 거실에 깔았다. 취향과 가격 사이에서 타협을 이룬 싸구려 러그 위에 누우면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사이로 부유하는 먼지가 보였다. 새벽에 출근한 남편이 저녁과 밤 사이 시간에 돌아올 때까지 내 옆을 유영하는 먼지가 바닥에 내려앉는 것을 가만히 누워 바라보았다. 춥고 배고프고 울렁이는 채로. 스노우볼이 깨지고 반짝이는 눈이 사실은 종이 알갱이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처럼. 집에 내 몸을 누인 것이 아니라 내 몸 위에 집을 인 것 같았다.


결혼한 지 얼마쯤 지났을 무렵 신혼집에 들른 엄마는 말했다. “너희 집은 춥다.” 나는 엄마의 말에 조금 어리둥절했다. “엄마, 보일러를 안 틀어서 그래. 보일러 틀면 안 추워.” 나의 말에 엄마는 “너희 집은 온기가 없다.”라고 작게 말했다. 황실빌라는 계절의 혹독함을 알려주는 집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맞은 여름에 나는 타조가 적을 피해 모래 속으로 머리를 처박듯 냉동실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중창이 아닌 창틀은 겨우내 덜커덩거렸고, 짙은 초록의 동그란 사기가 붙어 있는 옥장판이 침대에 놓이기 전까지 겨울밤 이불 속에 들어가는 것은 한겨울 계곡물에 입수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새 아파트가 더 춥다니. 몸 위에 집을 인 내 형상을 두고 한 말이었을까? 엄마의 말에는 어쩐지 떫은 맛이 났다.


새 아파트에서 두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동안 나의 원가족들은 차례로 황실빌라를 떠났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남동생은 결혼하고, 엄마는 옆 동네로 터를 옮겼다. 혼자가 된 엄마는 이층집의 1층으로, 이층집의 2층으로 옮겨 다녔다. 아이들의 여름방학 때 놀러 가기에는 덥고 겨울방학 때 찾아가기에는 추운 집으로. 그러다 몇 해 전 엄마는 필로티 빌라의 1층으로 마지막 이사를 했다. 황실빌라의 유산이 아닌, 환갑을 넘긴 엄마가 엄마의 이름으로 마련한 온전한 엄마의 집이었다. 황실빌라처럼 조금 허술하고, 오히려 빛은 덜 드는 그 집에 대해 엄마는 말한다. “여름에는 황실빌라보다 안 덥고, 겨울에는 너희 집보다 따뜻하다. 너희 집은 춥다.”라고.


집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체온을 바꿔 놓는다. 제 몸을 온전히 뉠 곳을 제힘으로 찾은 이는 그 집 안에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체온을 갖는다. 엄마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엄마의 종착지를 찾은 듯하다. 나는 여전히 엄마가 춥다고 말한 그 아파트에 살고 있다. 눈부셨던 바닥의 타일은 긁힌 자국들로 덧입혀졌다. 더러 금이 가고 깨진 곳도 있다. 새 아파트가 헌 아파트가 되는 동안 여름에는 조금 더운 채로, 겨울에는 조금 추운 채로 넷이서 곡진히 살아왔다. 언젠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곳을 떠나고 나와 남편만 남게 될지도, 또는 다 같이 새로운 곳으로 떠날지도, 혹은 각자 새로운 곳으로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곳이 나의 기착지일지 종착지일지 확언할 수 없다. 다만 아직 스노우볼의 막은 단단하고 종이 알갱이마다 새겨진 추억이 집 안을 유영한다. 폭염에는 땀을 흘리고 혹한에는 몸을 떨면서 스노우볼을 흔든다. 온온한 눈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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