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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Oct 21. 2021

Day 20 한라산 영실코스

한장요약: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오늘은 드디어 고대하던 한라산 등반일!

일단 맛보기로 가장 난이도가 낮은 영실코스에 도전해본다.

블로그에서 열심히 공부한 대로 오전 7시 반에 출발해  오백장군과 까마귀가 있는 최전방 주차장까지 올라간다.

평일인 덕에 8시 5분경 거의 1st tier에 주차 성공!

높은 고도(1,280m)를 염려해 마구 껴입어서 그리 춥지 않게 등산을 시작한다.

예습한 대로 초반은 완만한 오르막이라 룰루랄라 겁도 없이 신이 난다.

드디어 공포의 계단지옥 시작.

나는 그래도 20일 가까이 오름으로 훈련을 한 덕인지 숨이 헐떡이게 힘이 들지 않았지만 엊그제 도착해 첫 산행을 한라산으로 시작한 언니는 급작스러운 계단지옥에 놀란 심장이 열일하느라 얼굴이 달아오르고 한겹한겹 옷꺼풀을 벗기 시작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펼쳐지는 장관에 조금씩 오르고 구경하고를 반복하며 꾸준히 나아간다.

영실기암, 오백나한, 병풍바위를 지나고,

조금 더 오르니 뒤편으로는 멀리 바다와 구름을 배경 삼아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들이 등장한다.

인고의 시간 끝에 경사진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둘레길처럼 평탄한 데크길이 윗세오름까지 이어진다.

계속되는 멋진 풍경에 감탄만 연발하며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흐뭇해한다.

윗세오름 근처 데크길은 새로 바닥을 정비 중이었는데 이 높은 곳에서 고생하시는 분들 덕에 이렇게 편하게 오른다 싶어 정말 감사 마음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윗세오름.

화장실에 다녀와 목을 좀 축이고 있는데, 쉬엄쉬엄 오르며 자주 마주쳐 서로 사진도 찍어주던 어르신들께서 인심좋게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나눠주신다.

나는 차가 영실 주차장에 있어 영실코스로 다시 내려가려고 했는데 어르신들이 온 김에 다른 코스로 가보는 건 어떠냐고 꼬드기셔서 결국 어리목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잠시 남벽분기점 방향으로 조금 올라 백록담 남벽을 구경하고 어리목으로 하산 시작.

맑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 덕에 영실 계단에서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었고 어목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카펫처럼 펼쳐진 운무 덕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리목 하산길은 예상보다 난코스였다.

데크길보다 울퉁불퉁 돌길이 많아 두꺼운 등산화임에도 발바닥이 뜨거웠고 조금만 방심하면 발목이 틀어질까 잔뜩 긴장이 되었다.

그나마 준비해 간 발목보호대와 무릎보호대까지 착용하고 엄마가 꼭 필요할 거라며 쥐어준 등산스틱 덕에 큰 부상 없이 내려올 수 있었다.

절경의 영실코스에 비해 어리목코스는 훨씬 밋밋한 보통산의 흔한 등산로 풍경에 약간의 단풍(거의 낙엽;;) 보이고 영실코스보다 길기도 더 길어서 걷기에 꽤 지루했다.

어리목으로 내려가며 우리를 꼬드기셨던 어르신 일행이 자기들 때문에 고생한다며 자꾸 미안해하셔서 오히려 더 민망해하며 함께 하산했다.

언니는 신고 간 신발 바닥이 그리 두껍지 않았는지 나보다 더 고생을 하며 고관절 통증에 나중에는 절뚝이며 내려왔는데 어르신들께서 걱정하며 아래서 우리를 기다려주고 계셔서 오히려 죄송스러웠다.


지겨웠던 하산길도 드디어 끝이 나고 마침내 도착한 어리목 주차장.

영실 주차장까지는 택시로 주차해둔 차까지 이동했다.

어리목에서 영실까지 무려 15km 거리로 한라산을 굽이굽이 도는 s자 도로였는데 택시 기사님이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코너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으셔서 (아마도 매일 다니는 길이니 그러셨겠지만) 잠깐 놀이기구 탄 기분도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 그제서야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하찮은 몸뚱이가 SOS를 보낸다.

간신히 귤 한 봉지를 사서 숙소에 돌아오니 도저히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갈 에너지가 없다.

결론은 배달의 민족!

딱새우와 모둠회, 야채알밥과 매운탕까지 주문하니 30분도 되지 않아 문 앞에 가져다주신다.

신선한 회에 무엇보다 5천 원짜리 매운탕에 떡하니 생선대가리 살코기 얼마나 많은지 감동할 지경이다.

따끈하게 씻고 나와 더 뭉치기 전에 폼롤러로 다리와 엉덩이, 어깨까지 풀어주고 나니 노곤노곤하다.


효창공원 두 바퀴도 간신히 돌던 내가 무려 한라산이라니!

다음 주, 야심차게 예약해놓은 성판악 코스를 진짜 도전해볼 수도 있겠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흐뭇하게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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