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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Oct 30. 2021

Day 29 쇠소깍, 박수기정

한장요약: Live well, Laugh often, Love much!


백록담 등정의 여파로 어젯밤 쓰러져 잠들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온몸이 구석구석 땡기고 아프다.
화장실 한 번 가는데 온 근육들이 아이고 아이고라며 소리를 질러대는 기분이다.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와 한참을 뒹굴거리다 슬슬 배가 고파 느지막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점을 차려먹느라 억지로 몸을 좀 움직였더니 생각보다는 그리 아프지 않았다.
아침엔 막 일어나 근육이 좀 굳어있는 상태여서 더 삐걱거리게 느껴졌던 것 같다.
기운을 차리고 폼롤러로 좀 문질러주니 한결 나아진다.
쑥쑥 아리던 관절은 생각보다 훨씬 멀쩡했고, 종아리, 허벅지 앞쪽, 팔 안쪽 삼두가 조금 땡기는 느낌이었지만 평지를 걷는 데는 별 지장이 없고 계단 내려갈 때만 살짝 땡기는 기분이 드는 정도였다.


다만 제주 어디서나 흔히 보이던 한라산 백록담이 오늘부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나의 으쓱함 때문인 걸로.


내일은 짐 싸고 배 타러 가면 끝이라 오늘이 실질적인 마지막 날인데 침대에서 골골거리며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지도를 켜고 어디를 갈지 궁리해본다.
용머리해안은 전화해보니 전일통제라서 패스 (어제는 입장했다는데 이상하게 내가 가려는 날만 통제된다. 벌써 세 번째고 이번에는 못 보고 갈 듯).
섭지코지와 유민미술관을 갈까 했지만 너무 멀어서 패스 (일출봉 다녀오며 들르려던 계획이었는데 전에 일출보고 너무 피곤해 그냥 돌아오는 바람에 못 갔지만 예전 여행에서 몇 번 가봤으니 딱히 아쉽지는 않음).
기념품을 사러 오설록과 니스프리를 갈까 했지만 내일 배 타러 가는 길에 살짝 들러도 될 것 같아 패스.
고심 끝에 쇠소깍에서 테우를 타보기로 한다.
2007년도에 왔을 때 뭘 타긴 탔던 거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고, 2017년도에 왔을 땐 올레길 종착점이라 지쳐서 그냥 쓱 보고 지나쳤었다.
숙소에서 15분 거리로 가깝고 게다가 테우를 타는 건 내 다리로 걷는 게 아니니 금상첨화.


주섬주섬 챙겨입고 쇠소깍에 도착해 테우를 예약해두고 하효항까지 둘러본다.
검은모래 해안인데 해수욕장 느낌은 아니고 모래밭 곳곳에 사람들이 줄지어 돌탑을 쌓아두었다.


근처 기념품 매장에서 어제 고생하며 오른 한라산을 기념해 Mt. Halla 마그넷도 하나 구입하고 이제 테우를 타러 간다.
쇠소깍은 청정 보호지역이라 무동력으로 사람이 직접 노를 젓는 카약이나 밧줄로 끌어 이동하는 테우(일종의 뗏목)만 이용 가능하다.


테우 선장님은 매우 유쾌한 분이셨다. 본인에겐 번번이 반복되는 농담일 텐데도 정말 즐겁게 설명해주셨고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기 위해 귤도 던져주시며 호응을 유도했다.
가장 끝부분 돌아가는 포인트에서는 팀별로 사진도 혼신을 다해 여러 각도와 포즈로 찍어주셨다 (탑승자 중 나만 혼여였는데 어쩌다 혼자 왔냐며 안쓰럽게 보시며 내 사진도 열심히 찍어주셨다. 미국이었으면 짭짤하게 팁 좀 받으셨을 텐데.. 포즈는 선장님이 시키는 대로 ㅎㅎ)


예정보다 테우 타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마지 일몰을 보기 위해 열심히 동쪽으로 달렸다.
오늘의 일몰 포인트는 대평포구의 박수기정.
100m가 넘는 바위기둥의 위쪽 기암 부분을 기정이라 부르고 아래쪽 용천수가 흘러나오는 부분은 바가지(박)로 물(수)을 떠먹을 수 있을 정도라서 박수라고 한단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고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기도 웨딩 촬영 포인트. 이 정도면 나 제주에서 셀프로 스냅사진 찍을 수 있을 듯 ㅎㅎ).
오늘도 무사히 제주에서의 마지막 햇님과 인사한다.

햇님도 집에 가고 나도 이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싸야 할 시간.
언제 밥을 해먹을 정신은 없을 것 같아 근처 전복돌솥밥 식당에 들러 저녁을 해결하기로 한다.
손님들과 인사하는 걸 보니 관광객보다는 도민들 상대로 하는 맛집인 듯하다.
1인 주문은 늘 어색하고 죄송한데 고등어 반쪽 서비스까지 챙겨주셔서 감동했다.
제주답게 물김치에도 귤을 넣어 상콤한 맛이 났고 파를 달래와 함께 김치로 담으신 것도 맛있었다.
단체손님도 많아 바쁘신 것 같아 맛있다는 인사치레 대신 돌솥밥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먹고 나왔다.


해는 매일 뜨고 매일 지는데, 그게 뭐라고 제주에서는 하루하루의 일출과 일몰마저 소중했다.
서울에서도 매일의 일출과 일몰을, 그렇게 내 삶의 모든 순간들을 깊이 사랑할 수 있기를 마음 깊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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