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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Oct 31. 2021

Day 30 다시 육지로

한장요약: Au revoir pas Adieu!


어젯밤부터 짐을  싸고 있는데도 내일이면 또 서귀포의 이 방 이 침대에서 눈을 뜰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옷은 어젯밤 대충 챙겨두고 아침엔 냉장고 비우고 쓰레기 버리고 씻고 짐옮기기만 하면 된다.

7시쯤 일어나 정리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냉장고 정리에 품이 많이 든다.

자잘하게 남은 반찬들을 정리하고 반찬통을 씻어 도로 가져가야 하는데 원룸형 방의 싱크대가 아담해 여러 번에 나누어 씻어야 했다.

가져간 반찬들도 다 먹고 두루마리 휴지도 다 쓰고 분명 공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외려 짐이 더 늘어난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10시 체크아웃이었는데 싸 짐을 못 내려서 조금 늦어질 것 같다고 했더니 아드님께서 캐리어를 차까지 번쩍 들어다 주신다. 카운터 담당이신 따님께선 오늘 아침 뒷마당에서 딴 거라며 노란 귤을 한 봉지 가득 담아주신다.

정말 깨끗하고 친절한 숙소, 마지막까지 감동이다.


찜해둔 제주 기념품을 사기 위해 부랴부랴 이니스프리로 이동한다 (오설록 쪽 건물이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제주의 사계절을 테마로 한 손수건 시리즈 중 동백 테마인 겨울을 사려다 엊그제 4.3 기념관에서 동백은 샀으니 이번엔 수국 테마인 여름을 고른다.

제주하우스 only인 아로마 롤온도 함께 집어 든다. 숙면에 도움된다는 진저와 스트레스 완화에 좋다는 비자림(민트향)을 골라 후다닥 계산 후 다시 제주시로 출발.

오늘은 오전부터 하늘이 찌뿌둥한데 떠나는 마음에 뭔가 위로가 되는 기분이다 (나는 떠나는데 날씨가 너무 좋으면 발이 떨어지질 않았을 듯).


배 타기 전 제주항 근처 맛집인 남춘식당의 고기국수를 제주의 마지막 식사로 정한다.

(리뷰에 맛은 좋은데 손님이 너무 많아 친절하지 않다고 했는데 문 앞의 줄서기앱 키오스크 덕분에 문의가 줄어서인지 다들 친절하셨다.)

6팀 대기 후 한참을 기다려 먹게 된 고기국수는 역시 소문난 맛집답다 (맛집만 찾아다녀서인지 아직까지 제주에서 고기국수를 실패한 적은 없긴 하다.)

김치 맛에 까다로운 전라도 사람인 내 입에도 잘 맞게 갓담은 배추김치가 정말 맛있어서 고기와 궁합이 아주 좋았다.

완도항에 도착해도 저녁을 제대로 먹기 힘들 것 같아 맛있다는 김밥도 한 줄 포장한다.

고기국수에 한참 빠져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받아보니 내가 타는 배 화물담당자이다.

완도에선 너무 일찍 도착해 출차가 힘들길래 요번에는 적당히 천천히 가려했는데 식당 웨이팅 때문시간이 좀 빠듯해지긴 했다.

타는 배가 추자도 경유 배라서 완도까지 가는 배가 더 먼저 선적되어야 한다는 담당자님의 전화에 바로 젓가락 내려놓고 제주항으로 달려간다.

완도행 마지막 차라는 콜과 함께 선적 완료 (덕분에 일찍 출차).

생각보다 아담한 배 사이즈에 얼른 멀미약을 마신다.

사실 이번 여행 최고의 본헤드 플레이(멍청이 짓)가 제주-완도행 배 예약이었는데 나오는 날이 주말인 걸 생각 않고 9월 중순에야 예약하려 보니 30일 제주-완도 직항 배들은 한 달도 전에 이미 차량 예약 매진.

간신히 몇 개 안 남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로 예약을 하고 보니 이건 추자도 경유 배였다.

(덧. 사실 꼭 완도로 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고 고흥이나 여수나 목포나 다 완도-광주랑 거리는 비슷비슷한데 그땐 왜 완도로 가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건지 참..)

아무튼 기왕 이렇게 된 거 추자도 구경도 하면 좋지, 라며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바람이 좀 센 날이라 배가 꿀렁꿀렁거리길래 멀미대마왕인 나는 얼른 잠부터 청한다.

추자도 도착을 알리는 방송에 잠을 깨고 내다보니 추자도 인근 섬들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선실에서 보니 병풍처럼 펼쳐져 아주 미려하다.


추자도에서 다시 완도로 출발.

점심을 먹고 배를 탔는데 벌써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멀미약 덕분인지 다행히 아무렇지 않아 갑판으로 나가본다.

와, 배에서 보는 일몰이 아주 장관이다 (구형 핸드폰 카메라의 한계 ㅠ)

백만 불짜리 일몰과 석양을 보고 나니 이것만으로도 추자도 경유의 불편함은 다 보상받은 듯하다.

어제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선물처럼 주어진 근사한 일몰에 감사할 따름이다.

1시 45분에 제주에서 출항했는데 바람이 세서인지 파도가 높아 완도에 도착한 시간은 무려 저녁 7시 5분.

차를 빼고 나와 광주까지 찍어보니 9시 25분 도착 예정이다.

남춘식당의 김밥을 먹어가며 캄캄한 국도로 내달린다.

제주와는 사뭇 다른 차갑고 싸늘한 육지의 밤공기에 서서히 사바세계의 기운을 실감한다.


Au revoir pas Adieu!

작별이 아니라 잠시만 안녕이라고 인사하며 떠난 제주 (벌써 다음 제주 여행 계획 리스트 작성 중).

앞으로 이번처럼 한달살이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자주자주 오겠노라고, 늘 그렇게 같은 모습으로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한달살이 돌아보기와 제주여행의 소소한 팁들 정리하며 당분간은 제주글을 더 써볼 참이다.

그렇게 나의 제주앓이는 한동안 더 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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