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띠리리리링 "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카톡으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 상황을 잘 아는 그녀는 나의 입원 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너무 심심하고 답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가끔 전화를 했다. 친구와 통화를 하면 반갑고 재밌고 가끔은 내가 환자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 돌아간 것 같아 즐거웠다. 하지만 병원 생활이 심심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심심할 틈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입원을 하면 그냥 침대에 누워 치료만 받으면 되는 줄 알지만, 나의 경우 엄청나게 번거롭고 반복적인 일상을 소화해내야 했다. 많은 의료진들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는 자리에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환자 본인이 능동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술 후 회복을 전제로 하는 환자들은 보통 입원기간도 짧고 수술 직후에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여서 상대적으로 의료진이나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 같은 혈액암 환자들의 경우 딱히 수술이랄 게 없이 항암으로 대부분의 치료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골수이식이란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이식도 수술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항암보다 훨씬 더 독한 항암/방사선 치료에 가깝다.)
하지만 엄청나게 독한 항암제가 수술 못지 않게 환자들을 나락으로 보내고 면역을 바닥까지 떨어뜨린 후 회복해야 하는 시스템이기에 회복하는 기간은 아무리 짧아야 3주에서 한달 이상이었다. 그래서 내가 관해라고 불리는 1차 항암을 위해 입원해서 퇴원하기까지는 무려 45일이나 걸렸다. 그래서 말 그대로 내가 한 건 입원 치료라기 보다 입원”생활”이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항암을 시작하게 되면, 하룻동안 내가 먹는 물, 음식, 간식 등 모든 음식의 종류와 양을 구체적으로 기입하고 화장실에 갈 때는 대소변량까지 정확히 체크해 적어 놔야 했다.
아픈 몸 가누기도 힘든데 하루에도 열 댓 번씩 드나들어야 하는 화장실에서 내 몸에서 나온 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자니 너무 귀찮고 힘들고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으레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퇴원 막바지에 저것들을 안해도 되는 상황에 이르자 참 홀가분하면서도 뭔가 할 일을 빼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항암제가 투여됨과 동시에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엄청난 양의 수액과 약을 맞고 시간마다 혈압, 맥박, 체온을 체크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들락날락거렸다. 이러한 일련의 루틴들은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밤에도 푹자지 못하고 낮에도 비몽사몽 정신 없는 상태로 보낸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항암 부작용 중 가장 흔하다는 메스꺼움과 구토가 일어나는 날이면 초죽음 상태였다. 아무리 흔하다 한들 어쩜 나만은 비껴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위안했던 많은 것들이 대부분 내 몸을 스쳐 지나갔고, 내가 귀찮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병원에서의 일련의 루틴들은 차라리 고마운 일상이었다. 물 한모금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은 괜찮았지만 침대에 뉘어 몸을 살짝만 틀어도 뱃멀미가 시작되는 고통,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지는 복통과 구토.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데도 계속 화장실 변기를 끌어안게 되는 이 마법이 정말 괴로웠다.
모 연예인이 항암치료의 고통에 대해 “소주3병 마시고 완전 숙취에 몸살 감기가 왔는데, 떡까지 먹고 체한 거다. 근데 길 가는데 누가 날 발로 밟는 거다. 항암은 그런 느낌이었다.” 라고 회상하는데 어찌나 공감이 가는지..그녀의 리얼한 표현력에 경의를 보냈다.
이렇게 정신 없는 병원생활을 하는 사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에 돌입한 신랑과 부모님이 거의 교대로 나를 보러 와줬다. 사실 면회가 제한되었지만 그래도 몰래 몰래 잠깐씩 만나고 왔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일 때는 면회도 불가능했지만 최대한 몸을 일으켜 가족들을 만나고 오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신랑과 부모님 걱정하지 않게 최대한 덜 아픈 척 하려고 정신을 가다듬고 나갔다 오면 정말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무리 괜찮은 척 해도 몇 십년 날 봐온 부모님은 날 꿰뚫어봤지만.. 그렇게 참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다 얘기하라며 더 가슴 아파 하는 모습에 나 또한 울컥했다.
반복되는 항암 일정과 부작용.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속에 이웃 환자와 간호사들과의 소통, 사이사이 나를 걱정해주는 가족, 친구들의 따뜻함을 느끼고, 목소리만 들어도 힘을 주는 내 두 딸들과 영상통화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나의 입원 생활은 스펙타클하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