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요

무균실의 추억

by 스돕


말로만 듣던 무균실(이식실)은 상상을 초월했다. 두 세평 남짓 되는 공간에 침대 화장실 세면대 샤워시설이 한데 모여 있는 이 곳은 침대 위편에 씨씨티비까지 있었다. 화장실 변기는 침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고 링거는 침대 옆에 단단히 묶여 있어 몇 발짝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거 미드에서 자주 보던 장면인데…내가 지금 독방에 갇힌 건가?


게다가 침대 옆 벽면은 반 이상이 개방되어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날 훤히 볼 수 있었다. 볼일을 볼 때마다 블라인드를 내려야 하다니... 도대체 여기가 중국화장실도 아니고 환자의 인권은 싸그리 무시해도 되는건지.. 이식 선배들이 다시는 무균실에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난 왜 이식실이 이런 구조여야 하는지 조금 납득하게 되었다. 이식전처치 항암은 정말이지 지독했다. 이식 전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그 전에 했던 항암은 사람이 견딜만한 수준의 것이었다면 이번 항암은 누구도 버티기 힘든 정도에요.”


선생님은 빈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들 큰 효과는 없었다. 계속되는 독한 항암제와 각종 약물들로 난 물 한모금 마시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신기하게 뭔가가 계속 나왔다. 변기는 꼭 침대 옆에 있어야만 했다. 오한 고열 탈수 극심한 어지러움의 순간에도 수시로 변기를 끌어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무균실에서의 대부분이 고통에 해롱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몇 발짝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찌 보면 무균실은 환자를 배려한 배치였던 셈이다. 모든 것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무균실에서는 일체의 면회가 제한되어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흡사 독방같은 공간에 갇혀 고통에 몸부림치다 보니 마음도 점점 약해져 갔고 급기야 갑자기 숨이 가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숨을못쉬어 죽을것만 같았다. 어디서 본 대로 심호흡을 하여 점점 진정시키기는 했지만 수시로 두려움이 밀려왔다. 폐쇄공포증이 이런 걸까?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식실은 그런 곳이었다.


이식실에서 내가 고대하는 유일한 시간은 멀리서나마 딸아이와 신랑을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내 방 한쪽 벽면엔 가로로 긴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창문 너머로 병원 주차장이 보였다. 내가 바깥세상에서 볼 수 있는 거라곤 그 주차장을 오가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딸아이가 골수공여를 위해 입원하는 동안 하루에 한 두번씩 나를 보러 주차장으로 와줬다.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린 서로 전화로 이야기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어떤 날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신랑과 딸아이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기도 했다. 나를 위해 어린 딸이 입원까지 했는데..난 더 힘을 내야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힘이 되는 건 역시 희망이었다. 이것만 이겨내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안을 수 있다는 희망…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이 없는 사람은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한편 고통의 밤에는 지독히도 느리게 흐르던 시간을 부여잡고 이것저것 상상을 해보려 애썼다.


난 지금 독방에 갇힌 죄수지만 한달만 지나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난 지금 사람이 되기 위해 차디찬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어야 했던 곰이다. 조금만 참으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칼 세이건’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무균실에는 감염의 우려로 새 책만 들여올 수 있었는데, 난 책 읽을 형편이 안될 것 같아 딱 한권만 가져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전에 읽다 포기했지만 매우 흥미로웠던, 그리고 꽤 두껍고 어려워서 오랫동안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의 저서 ‘코스모스’를 선택했다.


근데 놀랍게도 칼 세이건 역시 나와 비슷한 병마를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전에 읽었을 때는 전혀 캐치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 역시 골수 이식을 했고, 더 놀라운 건 골수이식을 하면서도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난 이곳에서 책을 펼치는 것조차 너무 힘이 들던데..어떻게 책까지 쓸 수 있었을까?


고통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무균실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웅녀와 칼 세이건은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상상 속의 그들과 연대하여 이 난관을 뚫어보고자 했다. 골수이식을 하면서도 집필의 끈을 놓지 않았던 칼 세이건처럼 나도 언젠간 글을 써볼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한 게 이 즈음이다. 고통의 순간에 함께 한 그들 덕분에 지금 난 브런치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엉뚱한 상상도 살아가는 힘이 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