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기다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사실 그날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딸내미와 콧바람 좀 쐬려고 혹시 집에 있나 싶어 들렀다는, 어쩐지 수줍은 아빠의 표정에 얼른 옷을 챙겨 입고 아점을 먹으러 갔다.
나와는 달리 항상 계획적이고 유비무환형인 남편 덕에 난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다. 혈소판이 조금 낮은 것 외엔 오랫동안 특별한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그려려니 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피검사 수치가 이상하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재생 불량성 빈혈’이 의심된다는 소견서도 함께였다. 재생 불량성 빈혈? 빈혈이란 얘긴가?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폭풍 검색을 해보았더니 생각보다 심각한 질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안면이 있는 대학병원으로 갔고 선생님은 지난번 검사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약속된 일주일 후 그 결과 통보 차 전화가 온 것이다.
난 얼른 식당 밖으로 나갔다. 수화기 속 간호사는 의사 선생님을 통해 직접 결과를 들으라고 했다. 그때 뭔가 심각하다는 필이 왔고 선생님은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입원해서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도 2주 정도면 퇴원할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당장 이틀 뒤 아버님의 칠순 잔치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칠순 잔치에 빠질 수는 없었다. 잔치를 코앞에 둔 시부모님께 내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고 얘기하는 것은 더더욱 못할 노릇이었다. 선생님께 칠순 잔치가 끝나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입원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일이 벌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한동안 멍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기분 좋게 딸과 함께 밥 먹으러 온 아빠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꾸 울컥울컥 불안과 눈물이 차 올랐지만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입원말미는 고작 이틀이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내 상황을 알려야 했다. 최대한 침착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아빠에게.. 그리고 다음날엔 아버님 칠순 잔치를 무사히 마치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차곡차곡 입원짐을 싸면서 ,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두 딸아이에게 엄마 2주면 다시 올 수 있다는 약속을 하면서 계속 눈물을 삼켰다. 무엇보다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들을 못 보고 챙겨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래도 병원으로 향하는 깜깜한 차 안에서 나는 한줄기 희망이 있었다. 오진일 수도 있다는.. 2주 후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