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도 좋다
오늘로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명절을 내 집에서 맞으니 감회가 새롭다.
작년 추석과 설은 신관 5층 병동에서 보냈다. 공교롭게도 명절을 앞뒤로 입원 치료가 잡혀 있었다. 명절에도 병원에 있어야 하는 처지가 심히 우울했지만, 가끔은 이웃사촌보다 못하다는 먼 친척들과 얼굴을 맞대고, “아직은 치료 중이지만 이렇게 멀쩡해요. 난 정말 괜찮아요.” 하며 애써 웃음 짓는 일은 피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심신이 괴로운 건 오히려 남편과 부모님이었을 것이다. 홀로 두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향하는 남편의 발걸음이 가벼웠을 리 없다. 엄마아빠 역시 왁자지껄해야 할 명절, 덩그러니 홀로 병실에 남은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난 엄마아빠와 남편이 싸 들고 온 명절 음식으로 외롭지 않았다. 사실 남편과 엄마 아빠 얼굴을 볼 수 있어 외롭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4인 병실이지만 명절을 맞아 대부분 퇴원했기에 나와 동갑인 환자 둘이서 송편을 나눠먹었다. 우리는 끼니마다 배선실로 가 남은 송편과 전을 데워 병원밥에 곁들여 먹었다. 병원에서 먹는 명절 음식은 정말 별미였다. 열흘을 함께했으나 제 코가 석자라 별 친밀감이 없었던 우리는,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음식을 나눠먹으며 한껏 친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연휴지만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라운딩을 돌던 간호사에게도 송편을 나눠주었다. 말씨에 사투리가 진하게 배어 있던 간호사는 내가 건넨 음식에서 고향의 맛이 난다고 했다.
이번 설은 입원도 치료도 필요 없지만 역시 혼자 보내기로 했다. 내 컨디션을 염려한 시부모님이 마음 편히 쉬라고 연락을 주셨다. 사실 그동안 못 간 게 죄송해서 이번에는 꼭 가리라 마음먹은 참이었다. 아픈 게 내 탓은 아니지만 아픈 며느리를 옆에 두고 마음 졸여야 하는 삶을 선사한 장본인인 나는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가끔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던 어머님 아버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내게 엄청난 위로가 되는 동시에 더 큰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이제 어머님, 아버님께 저 이만큼 건강해졌어요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동안 못 한 거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래도 남편과 아버님께서 내가 집에서 쉬는 게 마음 편하다 하시니 그러기로 했다. 푹 쉬고 더 건강해져서 따뜻한 봄날에 뵙는 걸로..
방금 남편과 아이들이 시댁으로 출발했다. 작은 딸의 머리를 곱게 빗어주고 한복도 챙겼다. 빛깔 고운 한복을 보니 정말 새해인가 싶었다. 아이들이 없는 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그래도 거실 창으로 스미는 햇볕을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이거이거 집에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설레는 걸까? 새해 인사 차 연락한 친구에게 오늘 혼자 집에 있을 예정이라니 부러워 죽으려고 한다. 친구 몫까지 즐기기로 약속했다.
눈에 띄는 집안일 좀 해놓고 맘 편히 영화도 볼 생각이다. 참 우리 딸들, 조카들 줄 세뱃돈 봉투도 준비해 둬야겠다. 예쁜 종이에 덕담도 한자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