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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Jul 01. 2024

40년만에 예방접종, 이런 효과가?

감사함을 느끼다

며칠 전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하고 왔다. 폐렴, 파상풍, 디프테리아.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챙겨 맞췄던 건데 난 이제 시작이다.


골수이식을 하면 원래 있던 피가 깡그리 바뀌고 새 피로 재부팅되기에 예방 접종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그동안 내가 어떤 예방 주사를 맞았든 모든 효력이 다 사라지고 신생아와 같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 이식 6개월이 지나면 예방 주사를 고려해 보지만 나는 여러 번의 이벤트가 있었고 혈액 수치가 오르지 않아 늦어졌다. 그래서 이식 1년이 지나고 또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선생님이 조심스레 “이제 예방접종을 시작해 봐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 울컥할 정도로 좋았다. 상장을 손에 쥔 어린아이 마냥.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예방 주사는 생각보다 꽤 많이 아팠다. 주사를 놓을 때마다 간호사가 물었다. 이 주사가 조금 아파요. 자주 쓰는 팔이 어느 쪽이세요?”그래서 나는 비교적 자주 쓰지 않는 왼팔에 폐렴주사를, 오른팔에 나머지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주사 맞은 날의 내 양팔은 돌덩이를 얹은 듯 뻐근했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맞을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지만 이번이 3차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참을만한 것 같기도 했다.


항암도 여러 번 하고 수차례 골수검사에 골수이식까지 한 나에게 주사는 그야말로 껌일 것 같지만 사실 난 아직도 바늘이 무섭다. 하물며 한 달에 몇 번씩 하는 채혈 때도 오만상을 찌푸린다. 왜 이런 고통은 익숙해지지도 않는지..


그런데 이번에는 주사가 문제가 아니었다. 주사를 맞은 후 뻐근하던 양팔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저려다. 주사 부위가 욱신거리는 것은 물론 양팔을 살짝 드는 것조차 힘들었다. 양치를 하는 것도 밥을 푸는 것도 힘겨웠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속도 메슥거려 눕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태가 되었다. 1,2차 접종 때도  하룻밤 자고 나서야 나아진 기억이 있어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들 수도 없었다. 침대에 팔이 닿기만 해도 아프고 몸을 돌려 눕기만 해도 머리에 지진이 난 듯했고 먹은 건 없는데 토할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종종 배가 아프고 피부발진으로 고생하는 건 다반사지만 이렇게 날카로운 통증, 내가 나를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은 오랜만이었다. 


문득 병원에서 보낸 시절이 떠올랐다. 강한 진통제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불면의 밤들, 상상하지 못했던 고통에 몸부림치던 시간들. 간이 지나 분명 희미해지긴 했지만 그때를 회상하자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맞아. 매일이 이렇게 고통인 적도 있었는데. 긴긴 항암과 이식을 마치고 몸은 힘들어도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것만도 참 감사해 눈물이 날 정도였는데. 요즘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한숨을 많이 쉬었다. 그토록 바라던 일상에 와 있는 데 말이다. 그새 잊었었구나.


긴 시간 또 시체처럼 누워있다 일어나니  다시 일상에 대한 감사가 밀려왔다. 밥을 넘길 수 있어서 좋았고 내손으로 아침을 차려줄 수 있음에 기뻤다. 그간 아이의 투정, 숙제하기 싫다는 짜증과 한숨, 주변사람의 한마디에 스위치처럼 반응하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또 반복될 것이란 걸 안다. 별거 아닌 일에 또 한숨 쉬고 찌푸릴 거라는 걸.. 덜 반복하기 위해 써본. 잊지 말라고.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살아갈 수 있는 하루의 소중함을 말이다. 그리고 내겐 아직 묘약같이 나를 다시 각성시키는(?) 예방접종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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