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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Jun 20. 2023

증발하는 마음들

[인사의 뒷모습 산문 연재] 살아가는 우리들

그녀는 자꾸 길을 잃는다. 젊은 날에도 그랬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도 물론이고, 한 번 간 곳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공간감각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머릿속에 그리지 못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예상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길을 잃는다. 그런 그녀에게는 언제나 동행자가 있었다. 동행자는 그녀가 가야 할 바를 알려주기도 하고 잠시 멈춰 망설이던 그녀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그녀에게 동행자는 단순히 길을 찾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길이라고 명명하는 인생을 함께 걸어가 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도 알지 못했다. 동행자가 그녀의 세상의 전부였음을. 동행자는 언젠가 홀연히 그녀의 곁을 떠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예상했다고 해도 어떤 것으로도 대비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행자가 떠난 후 그녀는 동행자와 함께 다녔던 그 길을 한 번 혼자 걸어보기로 했다. 잠시 멈칫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40년 이상을 함께 걸었던 길이기에 천천히 걸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며 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혼자만의 힘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길이 잠시 헷갈렸을 땐 동행자와의 함께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동행자가 앞서 갔던 기억, 따라오라고 손짓했던 기억, 잠시 멈춰 서면 그녀를 살폈던 기억. 함께한 모든 기억이 그 길에 있었다.


처음으로 동행자가 없이 출발했던 길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녀는 해 냈다. 집에 도착한 이후 다리에 힘이 풀린다. 털썩 주저 앉는다. 그리고는 멍하니 집중했던 머릿속을 비운다. 그러다가 문득 동행자가 없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한다. 나는 왜 길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이렇게라도 자꾸 반복했다면 조금은 쉬웠을 일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동행자를 내가 조금 더 살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후회를 해본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은 또다시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녀가 잠시 멈춰 서 있는 이 이 시간도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그녀는 가야 할 길을 동행자와의 추억을 통해 생각했다. 그녀가 길을 기억하는 방법은 동행자였다. 그녀는 잠시 다시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했다. 앞으로의 생에는 지금처럼 멀고 복잡한 길이 아닐 거란 생각에 조금 안심했다. 지금보다는 조금 단순해졌지만 여전히 길은 가야할 곳. 가야할 이 길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다가가기로 했다. 그녀는 동행자와 같은 존재들, 사람을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 날 그녀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그녀의 이웃이었다. 밥을 지을 때 함께 넣으면 달콤한 맛이 난다는 콩을 한 움큼 가지고 왔다. 그녀가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는 이웃은 가끔 그녀와 밥을 먹기로 했다. 그녀의 집으로 오는 길은 물리적으로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 동행자가 있었을 땐 그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녀의 곁에 동행자가 필요충분조건이었다는 것을 이웃도 알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녀가 홀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웃은 필요충분조건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요조건 정도는 채워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웃은 혼자가 된 그녀를 보며 불현듯 깨달았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홀연히 세상을 떠난다는 삶이라는 것을. 홀로 있음은 누구에게나 해당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서로의 필요가 되어 살아가기로 했다. 사실 그 두 사람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아챈 두 사람은 긴 대화 끝에 서로에게 완벽한 존재로서의 자리매김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가끔은 콩을 나눠 먹는 사이, 서로가 살아 있음을 알아차리는 사이가 되기로 했다. 홀로 있지만 가끔은 홀로 있는 것이 따분함이 아니라 자유로움이라고 환기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존재. 그렇게 그녀와 이웃은 서로를 향해 특별하지 않지만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되었다.


몇달의 시간이 흘렀다. 동행자가 없이 문을 나서면 언제나 두려움이 앞섰던 그녀는 가야 할 바를 알지 못했기에 삶의 방향도 더 이상 정해두지 않는 편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그때 이웃이 문을 두드렸다. 또다시 콩이었다. 함께 밥을 지어먹으면 달콤한 맛이 나는 콩. 생을 마감하기로 한 길은 잠시 걷기를 멈추고 밥을 지어먹는다. 몇 번이고 함께 밥을 먹으며 그녀는 생을 마감하기로 한 뱡향성을 잃는다. 밥을 지을 때 함께 콩을 넣으면 맛있고, 언젠가 그 이웃이 또 함께 밥을 먹으러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측하지 못한 방향성. 생을 마감해서는 안된다. 섣불리 길을 건넜다간 달콤한 밥을 먹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웃과 함께 밥을 먹으며 그동안 길을 기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선천적 문제라고 여겼던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해 몰입했다. 그러나 최근 자신이 다녔던 길이 다시금 떠오른 그녀는 몇 번이고 길을 찾아갔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했던 것을 기억했다. 동행자와 함께 갔던 길이라면 기억했던 그녀였다. 동행자를 떠올리니 길이 보였고, 그녀에게는 길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천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저 홀로 가는 길에 대해 의미를 찾지 못한 것이다. 홀로 가는 길은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동행자가 곁에 있었던 날들은 그녀가 동행자와의 사랑하는 날들을 기억한 것과 다름없었다. 동행자와 함께한 길은 그 마음으로 충분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 길만큼은 기억하는 것이 쉬웠다. 콩과 밥알이 섞인다. 씹을 수록 달콤한 밥을 먹으며 그녀는 생각한다. 이젠 다른 방법으로 남은 생의 길들을 기억하기로 한다.


길을 잘 잃는 그녀의 삶이 내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을 때, 한 편의 글이 내게 다가왔다. 나는 최근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기록한 책 <인간 증발>을 읽었다. 일본 사회의 가장 비참한 부분을 끄집어낸 이 책은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탐구로 가득 차 있다. 책 속의 글과 사진들은 스스로 사라지거나 혹은 사회가 사라지게 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고. 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글쓴이의 처절한 외침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하지만 실은 단 한 줄의 희망만 있다면 나는 포기를 포기하겠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라진 사람들은 동행자를 잃어버렸고, 어쩌면 처음부터 동행자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가는 길도 거침없이 떠나는 사람, 한 번 갔던 길은 쉽게 기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 삶에 충분한 동행자들이 존재한다. 가야 할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믿음과 자부심이 그들에게 있다. 마음은 길이 환하게 밝은 상태에 놓여 있도록 돕는다. 함께하는 사람들은 조금 멈춘 순간에도 서로에게 다시금 동력이 되어 준다. 


우리는 왜 홀로 있으려 하는가. 실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은 어째서 증발한 인간들에게만 그 이유를 묻는가. 그저 우리는 밥을 지을 때 함께 넣어먹는 콩이 필요할 뿐이다. 생각보다 달콤한 콩, 아주 작지만 동글동글한 콩. 우리는 그 콩이 필요하다. 길을 잃은 자들의 연약함에 대한 안타까움을 멈춰야 한다. 그저 우리는 이웃으로, 동행자로 콩을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언제부터 시작할지, 어떤 길에서부터 시작할지는 아직 증발해버리지 않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산문 연재는 계속됩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쓸모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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