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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Jul 07. 2023

읽는 사람

[인사의 뒷모습 산문 연재] 살아가는 우리들

그는 돌고 돌았다. 때론 바닷가에서, 때론 도심 한가운데에서, 때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더 빠르게 돌았다. 이것은 정말 빙빙뱅뱅 돌았다는 이야기다. 그의 직업은 비보이. 어린 시절 지하상가 상설무대에서 지역민 축제가 열렸던 그날, 유명 댄서도 아니었던 누군가의 현란한 춤을 보고 그는 무작정 비보잉을 배워보겠다 했다. 그냥 한 번 따라 해 본 그 춤이 그를 매료시켰다. 그는 춤을 추는 동안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떻게든 춤을 추며 살아가고 싶었던 그는 춤을 제외한 모든 삶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았다. 돈을 버는 동안에도,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자랑스럽고 착한 아들로 칭찬받는 동안에도, 여자친구를 사귀며 미래를 생각하는 동안에도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춤을 출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되도록이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춤을 추고 싶었다. 춤을 추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까지는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춤을 춘다는 게 좋은 일, 또는 의미 있는 일 또는 나아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춤추는 사람의 현실은 외롭고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춤을 추는 것만큼 값진 순간이 찾아왔다. 자신이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한 유명 댄서가 그의 지역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 차비와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없었던 그에게는 공연을 보기 위해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이 기회가 인생에서 다시없을 귀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팬심으로 공연장을 찾았던 그는 춤을 추는 것만으로 박수를 받는 무대 위의 스타를 보며 자신의 인생에도 이런 영광이 기다리고 있을까,를 의심하고 기대했다. 화려한 무대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척이나 공허하다고 느꼈던 건 도심의 소음이 리듬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춤이 시작된다. 그의 몸이 먼저 대지를 흔든다. 지금 이곳이 어디든, 누가 보고 있든 어떤 나로 비치든 중요하지 않다. 그 안의 리듬이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는 그렇게 오늘날의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다시 춤을 추기로 마음먹는다. 어떠한 영광을 바라면서가 아닌 춤을 추는 그로 살아가기를 꿈꿀 뿐이다. 


언젠가 그와 함께 '일'을 하게 된 적이 있다. 공공기관의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일이었고 나는 작가로, 그는 출연자로 만났다. 그전까지 나는 춤에 관하여는 문외한이고, 특별한 관심도 없었지만 그를 만난 후 예술이란 영역에서의 춤에 대해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를 춤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그의 움직임이 그 자체로 예술임을 알아차렸고,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든 현실을 이해하거나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와 같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춤이란 찰나를 꽉 채우며 존재한다. 다만 찰나 속에 꽉 채워진 색이 무엇인지 명확해지거나 때론 희미해지는 것은 춤을 추는 사람. 댄서의 몫이다.


내가 짜 놓은 각본대로 그는 춤을 췄다. 공공기관이지만 글로벌 기업 마인드를 추구하며 최첨단 장비와 최고의 환경, 높은 지식을 자랑하는 인력이 한 곳에 모여 다채로운 방향성을 추구한다는 콘셉트를 구성했던 우리는 춤을 통해 기관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기존에 했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홍보영상이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춤은 춤일 뿐, 그리고 공공기관은 여전히 공공기관일 뿐, 무언가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홍보영상은 기관장들의 호감을 샀고, 지금도 잘 사용되고 있다. 영상을 제작하면서 내가 유일하게 믿고 맡긴 장면들은 그 무명의 댄서가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혁신'이라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춤을 춰야 했고, 그는 해냈다. '도전'이라는 단어 하나만 듣고도 혁신과는 전혀 다른 동작이 나왔고 신기하게도 그의 춤에 도전이 보였다. 촬영을 마치고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그동안 춤에 대해 착각을 해도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춤은 몸이 움직이기 전에 서사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하나의 서사는 결코 개인의 짧은 지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는 사실. 


그에게 책을 선물했다. 그의 춤이 하나의 서사와 같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사를 이해하고 추는 춤과 인생을 이해하고 견디고 버티는 춤은 어딘가 모르게 언제나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춤에 관하여서는 문외한. 리듬이란 어깨 정도 들썩이는 정도일 뿐이지만 서사라면 조금 다르다. 춤을 보면서 춤을 즐긴다는 건 그 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며, 누군가 춤을 추고 있을 때 그 춤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거나 눈물이 흐르거나 하는 부차적인 일이 창조되는 일. 춤을 예술이라 느끼고 그 예술이 매료되는 일. 춤을 추지 않는 동안에도, 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의 서사를 이해했을 때 가능해지는 일이다. 춤추는 일은 어렵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건 얼마든지 자신 있는 나는, 그에게 매료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쯤이면 춤이 독서와 무엇이 다른가. 춤을 추지 않고도 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독서는 쓰는 우리가 되기 전 우리의 모든 생의 서사를 충만하게 한다. 내 이야기를 쓰기 전에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야기의 본질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뜻과 같다. 춤을 추기 전에 춤추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는 마음, 화려한 박수보다 일상에서의 리듬을 더욱 즐기는 담담함이 먼저 필요하다. 춤을 추며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생에 어떤 모양의 이야기가 펼쳐지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사람들의 소위 부르는 명예라는 이름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끝까지 춤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생길 거라 믿었다. 춤을 사랑하는 이들은 무대가 아니더라도 춤을 춘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미 역사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듯.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며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삶의 모양대로 춤을 추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더할 나위 없이 그것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며 경쟁할 수 없다. 


춤추는 이들이여, 쓰고 싶은 자들이여, 먼저 음악에 몸을 맡겨보자, 그리고 이미 우리가 살아있기 전부터 넘실댔던 홍수같이 쏟아진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보자.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예술에 먼저 다가가기를 바란다. 이것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춤을 추는 그에게 전하는 말이며, 쓰는 사람이기 전에 읽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나에게 전하는 문장이다.



산문 연재는 계속됩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쓸모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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