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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Aug 11. 2023

연남동에서

[인사의 뒷모습 산문 연재] 살아가는 우리들

어서 오세요, 친구를 만들어 드립니다.


서울의 한 거리, 전단지를 발견했다. 문장이 어딘가 좀 어색하다. 배우자, 애인도 아니고 친구를 만들어주겠다니. 결혼 정보회사가 호객을 친근감 있게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 내가 아는 그 친구를 말하는 것인가. 나는 한참 동안 그 전단지를 바라봤다. 마침 나에게 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객관적으로 따지고 들면 친구가 많지 않지만, 주관적으로는 친구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금 당장 새로운 친구가 필요하지 않지만 친구가 생긴다는 건 하늘이 조금은 내 인생에 개입을 해서 도와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일까 나에게 당신이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겠다면 언제나 환영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친구를 정의하기로, 상대에게 돈을 조건 없이, 단번에 꾸어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친구라 했다. 우정이란 돈보다 중요하기에 우정 앞에 돈을 수단으로 여길 수 있다면 '친구'라고 지칭할 수 있는 거다. 이런 논리라면 나는 친구에 대해 다시 정의해야겠다. 나는 꽤 친구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친구에게 돈을 꿀 수 없어서가 아니다.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에겐 어떤 경우라도 돈을 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와 나. 나와 친구 사이에 서로에 대한 생각 외에 다른 장치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나는 자주 이런 말들을 반복한다. '저, 계속할 수 있을까요. 아니 계속해도 될까요..' 수월하게 할 수도 있는 일들을 나의 '이상'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느낌이 들 때면 나는 친구를 부른다. 이상이 아닌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 친구는 그렇게 내 곁에 나의 또 다른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마음으로, 나 역시 친구에게 또 다른 네가 되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곁에 남아 있다.


나는 라디오 글쓰기를 매일 하면서도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고, 그러면 둘 다 해보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누군가의 질문에는 내가 언제나 꿈꿨던 이상만큼 내 한계가 부끄럽게 느껴져 늘 대답을 피했다. 반대로 등단작가가 되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문창과 시절에는 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글쓰기로 당장 돈도 벌고 싶었다. 그래서 돈 되지 못한 공모전 글쓰기에만 매달리는 누군가를 한심하다 여기기도 했다. 그렇게 누군가를 향해 한숨을 쉬었던 나는 글쓰기로 돈을 많이 벌었냐고? 아니, 간신히 최저시급을 받았을 뿐이었고. 그래도 작가 타이틀은 있었으니 알량한 자존심으로 그 일을 지속했다.


방송작가로 몇 년을 지내는 동안 나는 나의 부족함을 '협업'으로 채워나갔다. 세상에서 동료라 부르는 친구들이 나와 함께했다. 덕분에 그 '협업'을 대단히 멋진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이 협업이 나에게 긍정적인 결과로 다가온 날엔 이 방송국에서 내가 뼈를 묻어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어떤 날 이 협업은 때로 나를 위태롭게 했다. 단순히 개인의 성향으로 협업이 불가능한 사람과의 만남을 지속해야 할 땐, 즉 친구라고 여겼던 내 마음에 금이 가 버렸을 땐 잠시 기댈 곳을 잃게 됐다. 덕분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역량 이상의 일들을 해내야만 했었는데 그런 경우엔 결과가 좋아도 뭔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작가란, 특히 방송작가란 보이지 않는다. 영광을 받는 순간이 잘 오지도 않을뿐더러 온다고 해도 희미할 뿐이다. 그렇기에 방송작가로서 살아 갔던 나의 시절에 협업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혼자만의 영광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가 떠나가는 순간들, 즉 절망의 순간에 우리 삶은 무엇이 붙잡아 줄 수 있을까. 협업이 더 이상 소용없게 돼버리고 어떻게든 글쓰기를 지속하고 싶었던 어느 날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나와의 협업을 택했다. 열정으로 가득한 팀원은 없지만 내가 나 스스로에게 팀원이 되어줄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며 용기를 냈다. 그렇게 나는 나와의 협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협업은 나의 작품이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일. 그리고 그 일을 되도록이면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엄마의 뱃속에 있던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아무리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해도 어딘가에 상처가 나듯, 새로운 길로 떠나는 모든 여정은 상처와 넘어짐의 연속이다. 나와의 협업을 단단하게 준비하고 나섰다고 해도 상처를 내게 하는 가시는 눈을 돌리면 발견할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넘어지지 않게 앞으로 잘 나아가보자... 이렇게 다짐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나 언제나 상처는 예상했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와의 협업이 잘 이뤄지고 있는가, 를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다른 누군가를 탓하며 시간을 채워도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그 원망의 화살이 세상에 있지 않고 그저 이런 원망의 마음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의 마음에 있다면... 나와의 협업을 선택한 나는 원망을 한다 해도 결국에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는 내 안에 있다.


그날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나오는 길이었다. 연남동의 한 카페는 아름다웠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다양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개개인의 모든 순간이 한 곳에 머물러 공간을 채웠다.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다시 재연한다 해도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었다. 순간으로 존재하는 나. 내 안에 있는 나의 친구. 세상의 모든 시간을 오롯이 나의 것으로만 채우고 떠나는 우리는 모두 있는 그대로의 우리. 연남동에서 발견한 그 종이 한 장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안의 친구를 떠오르게 했다.


어서 오세요, 친구를 만들어 드립니다.



산문 연재는 계속됩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쓸모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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