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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Aug 10. 2023

소담하지 않을지라도

[인사의 뒷모습 산문 연재] 살아가는 우리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했던 누군가의 말들은 끝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질책한다. 하늘에서 시작된 빗줄기가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까지 그 과정을 예상한다 해도 땅에선 어찌할 수 없는 고통으로 부서진다. 어떤 모양으로 부서질지, 그 이후에 빗줄기는 어떻게 살아남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음에도 비는 떨어지고야 만다. 그 누군가가 그토록 말했던 끝을 봐야 하는 일 때문에 그렇다. 온전한 끝맺음이란 있을까. 인연의 헤어짐에도 추억이 남고, 사람의 죽음에도 어딘가에 기억이 남고, 전쟁이 끝난 이후엔 상처가 페이고, 열매의 흩어짐은 또 다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모든 사라짐은 고통이나 상처, 때론 고맙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다. 어떻게 남겨질지 그 남겨짐의 시작이 또 어떻게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언젠가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무작정 걷고 싶었다. 굳이 걷지 않아도 되는 길을 걸어보자, 했던 이유는 집이라는 도착지를 생각하지 않고 걷는 과정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걷는 과정, 목적지에 도착하는 모든 순간의 발자취. 우리의 모든 삶의 여정 그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것을 돌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시작한 일은 걷는 과정의 모든 순간에 조금 전 본 영화를 떠올리는 일이었다. 영화로 완성된 이야기는 언젠가 시작된 누군가의 이야기. 어떤 결말로 다가가고 있었을 다른 모양의 과정. 누군가의 삶이라 명명하는 작품.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에 기대어 오늘 밤을 채운다.


과정은 대부분 결말을 향해 가지만 언젠가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장이 과정이라는 순간에 속속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모든 과정의 발견은 나를 사로잡는다. 우리는 흔히 과정을 지나치는 일이라고 여기지만 삶에서 과정은 언제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점이다. 사랑을 예를 들어보자. 사랑에 결말이 어디 있겠냐 마는, 사랑의 결말을 지칭하고 그 완성으로 가려는 순간 과정은 괴롭다. 이쯤이면 완성됐겠지, 하는 사랑의 모든 과정이 바로 사랑의 결말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 앞에서 방황하며 방황의 끝은 방황의 모든 과정과 같다.


내가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글을 쓰는 모든 과정. 그 순간들을 아름답다 여겼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에 자신과의 문장과 외롭게 사투를 했던 누군가를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괴로움은 바로 내가 쓴 첫 문장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는 허탈함을 솔직하게 고백했던 어느 학자의 모습이 그 누구보다 커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내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아름답다고 느꼈던 위대함 들은 결말 또는 결과를 향해있지 않고 과정에 놓여있었다. 안타깝지만 그 모습은 위대함이라 부르기엔 너무도 일상적이고 소박해서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동경한다. 하필 그 소수의 누군가가 바로 내가 된 것일 뿐.


요즘 내가 만나는, 그리고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모습은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과정의 행복은 보이지 않는다. 쾌락이 아닌 행복을 찾기 위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는 걸까. 우리에게 펼쳐진 미래가 아니라 미래를 꿈꾸고 있는 오늘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만약 그 일이 조금씩 가능하다면 그 누구도 싸울 일은 없다. 다른 이들의 흠을 볼 여유도 없다. 나를 바라보기에도,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생각하기에도 나의 오늘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소담하지 않은 지금은 언제부턴가 미리 준비되어 있던 미래다. 결론은 언제나 과정에 있다.



산문 연재는 계속됩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쓸모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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