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사의 뒷모습
'평생 그 일을 할 줄 알았어?' 이제 더 이상 라디오 원고를 쓰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반복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동생의 그 한마디가 나를 찔렀다. 반복했던 일,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던 습관과 같은 나의 일. 좋고 싫고를 떠나 반복하면서 의미를 찾았던 일. 글쓰기로 원고료를 받을 수 있었던 소중한 일. 무명하고 보이지 않아도 글을 쓰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지속했던 일. 나는 최근 그 일을 멈추기로 했다. 결정을 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 고민했다.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글쓰기의 본질이 흐려진 것일까, 나의 글이 정말 누군가에게 들리고 있긴 한 걸까,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나의 글에 쓸모를 느끼고 있을까, 하는 등의 여러가지 의심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글을 쓰기 위해 1시간, 하루의 시간을 생각했던 결과물은 그렇게 늘 소비됐고, 때론 무시당하기도 했다. 라디오 작가가 갖춰야 할 글쓰기의 덕목이랄까. 그것은 '생활이 되어야 하는 글쓰기'였다. 이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글쓰기를 용인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을 때우면 되는 글쓰기라는 걸 알게 됐고 모두가 그 사실에 동의한다는 걸 알아차린 후, 나는 길을 잃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나는 평생 그 일을 할 줄 알았다.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에서 누군가 전하는 삶의 이야기들은 때로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가 언제나 보이지 않고 그렇게 삶의 화두를 던져 준 채 홀연히 사라지고를 반복한다는 것에서 매력을 느꼈다. 나는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형체를 알 수 없는 신에게 내 간절함을 고백할 때가 있다. 세월이 흘러 그 간절함의 순간을 잊을 무렵이면 그때 그 시절 내가 간절히 원했던 그 무엇이 나에게 도착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삶에서 늘 간절하게 원했던 것들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원할 때는 아니지만 중요한 건 그래도 나의 간절함이 신에게 통했다는 것. 신이 나의 간절함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사 희로애락을 다 이해하고 글을 쓸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조금 더 타인의 희로애락 속에 들어가기를 노력했다. 누군가가 오늘날 신에게 기도를 한다면 어떤 일들을 놓고 기도할까, 를 생각하는 식이었다. 간절함의 정도와 농도, 슬픔에 잠긴 타인의 나락을 상상한다. 그렇게 완성한 나의 문장이 평범하기만 한 어느 날 누군가에게 문득 생각나기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에 그 문장들이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나는 신이 아니다.
오만으로 가득한 나의 알량함은 이 일이 평생의 일이라는 착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매 순간 글쓰기의 행위로 세상과 싸웠다. 나의 글은 지면에 박혀 있지만 이 글이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랐고 그렇게 세상에 밀어 넣었다. 때로 이 글이 선전포고 같은 역할을 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방송작가가 글쓰기만 하면 될 일인가. 글쓰기로는 선전포고가 되지 않을뿐더러 적진에 함께 있는 사람들조차 이곳이 최전방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프리랜서 방송작가는 종종 몇 개의 프로그램 원고를 동시에 쓰는 경우가 있다.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다 보면 작가란 좋은 글쓰기를 위해 필요한 인력이라는 인식보다 전파를 타기 위한 잡다한 일들을 해 내야 하는 인력으로 취급받을 때가 있다. 작가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잡일에 가까운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대하는 방송국 직원들을 만날 때도 있다. 나 역시 작가라는 자부심과는 별개로 이런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 작가로서 더욱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될 때가 있었다.
봄이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하는 시기에 담당피디가 작가로 함께하자는 의사를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나의 안부를 물으며 '부업'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했다. 프로그램 한 개로는 원고료가 부족할 텐데, 하며 나를 회유했다. 작가라는 직업을 대하는 그의 사고가 '부업'에 그쳐 있다니, 전화를 끊고 나는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나를 생각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 뒤에는 나와의 서열을 은근히 정리하려는 그의 무의식적 의도가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부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때였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나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한 발 뒤로 물러가게 됐고 주변을 돌아봤다. 나의 글쓰기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프리랜서 방송작가인 내게 글쓰기란 허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물렀다.
평생의 일은 없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 차장은 말했지. 끝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일이 있다고. 어쩌면 나는 언제나 끝을 외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평생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착각 속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을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서 방송작가라는 직업인으로 살아가며 내 안에 버틸 수 있는 힘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을 때 선배에게 내 마음을 살짝 말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선배가 말했다. 현실에서 이상을 찾지 말아라, 그건 교회에서나 말하는 거지, 오죽했으면 미생이라는 드라마에 사람들이 열광하느냐, 그게 현실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나를 찔렀다. 선배의 말을 정리하자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용직 노동자였고, 감히 글쓰기로 직장생활을 해 보겠다는 패기만 있는 젊은이였을 뿐이다. 나의 착각은 확신이 됐다. 그래서 나는 포기를 도전하고 처음부터 다시 무언가를 쓰겠다는 다짐을 더욱 견고하게 굳혔다.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일은 그 사람의 모습을 닮는다. 사람들의 모습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다양한 직업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는 각자의 모양대로 주어진 일들을 해 낸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평생의 일이라 착각하며 또는 확신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착각과 확신의 기로에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가 넘어질 때도 있지만 분명한 건 간절함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실현된다는 것. 오늘날 그래도 나아가는 나의 글쓰기는 평생의 일이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라!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
이 말들은 포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죠.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통하는 위로의 메시지는
‘포기해도 괜찮다’ 는 말이라고 합니다.
꼭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거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포기 때문에
후련함과 자유를 느끼기도 하잖아요.
더 이상 포기란
개인의 의지박약을 드러내는 단어가 아닙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할까,
이렇게 고민했을 때
그것이 누군가의 평가 또는 시선이었다면
그건 다시 돌이킬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삶의 주인은 모두 우리 자신이니까요,
때론 포기도
내가 선택한 자랑스러운 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