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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Apr 04. 2023

밥을 먹는 방법

[연재] 인사의 뒷모습

출판편집자들에게 받은 피드백 중 나를 설레게 했던 말이 있다. '작가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데 그동안 어떻게 참으셨어요.' 내가 보낸 원고들을 보고 했던 말이다. 나의 부끄러운 원고를 들킨 뒤 나의 손가락이 어딜 향해 가 있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편집장의 그 한마디는 나를 위로했다. 어디로 향하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그저 쓰면 되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준비가 됐다면 그다음 마주한 문제는 결단의 마음이다. 나는 쓰는 사람이기 전에 누구보다 문학을 사랑하는 열렬한 독자다. 사실 독자라는 이 포지션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평생 독자로만 살아도 먹고 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책 값이 오르지 않고 읽고 싶은 글을 맘껏 읽고 소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때때로 생각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노동을 해야 한다. 읽기 위한 쓰기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다시, 읽기를 통해 얻게 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또 다른 내 세상이 완성되도록 돕는다. 그때 결단한다면 쓰기가 가능하다. 결단의 마음 뒤에 숨은 나의 용기를 향해 손짓해 본다. 대답이 없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어쩌나 조심스럽다. 그렇게 세상에 있지도 않은 허무한 돌다리들을 무수히 두드려 보고 첫 문장을 쓴다. 이번 글은 '밥을 먹는 방법'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며칠 전 나는 밥 먹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내가 자주 가는 분식집이 있다. 그날도 참치김밥이나 소고기김밥 소고기 빼고를 주문하며 사장님과 눈을 마주쳤는데 사장님이 뭔가를 망설이셨다. 사장님은 이제 곧 장사를 접으실 거란 이야기를 하셨다. 안된다. 나에게는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김밥이 먹고 싶을 때마다 찾았던 분식집이다. 김밥 한 줄을 사고 그 한 줄을 다 먹을 때까지 내내 서서 사장님과 강아지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은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면 언젠가 시골 한적한 동네에 가서 유기동물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들 몇 마리를 데려와 치료하고 산책하고 밥을 만들어 먹이는 일만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말도 하셨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밥을 먹으러 갔다가 다른 세계를 한껏 상상하고 오곤 했다. 이렇게 저렇게 없는 돈 있는 돈, 요즘 말하는 영끌을 해서 결국엔 강아지들과 여생을 보내겠다는 포부. 김밥이 오늘 맛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도 없고 오늘 원고가 날씨와 맞지 않는다, 좋다 할 대수롭지도 않은 남들의 평가와 시선 따위 필요치 않은 그런 삶, 그런 시간. 그저 꿈을 꾸는 곳이다. 김밥의 길이가 너무 짧다.


사장님이 가게를 그만두시기로 한건 강아지들 때문이 아니었다. 내내 서서 일했던 탓에 관절에 무리가 갔고 건강을 위해 쉬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어찌 됐든, 가게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내 생각이 났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다. 그래도 김밥 한 줄 먹으면서 강아지 이야기 했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으니 아쉽다면서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강아지보다 중요한 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사장님의 건강이니까. 나는 나의 한 끼를 기꺼이 포기하기로 했다. 다만 밥 먹는 방법을 잃어버렸으니 잠시 방황할 수밖에.


사장님이 가신 자리, 그 근처엔 프랜차이즈 김밥집이 생겼다. 메뉴도 다양하고 소위 고급진 인테리어를 갖췄다. 아직 내키진 않지만 또 다른 어느 누군가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을 그 일을 응원해주고 싶어서 나는 새로 오픈한 김밥집을 찾았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방식이라 누가 사장님인지 알 수 없었고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메뉴판이었기에 음식에 대한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김밥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 무렵 누군가 화분을 들고 찾아왔다. '개업을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 카드도 눈에 띄게 보였다. 젊은 남자가 주방에서 나오더니 화분을 들고 카운터에 있는 다른 화분들 틈에 새로운 화분을 놓았다. 그리곤 말했다. '대박 나야 할 텐데요.' 


나는 사장님의 말에 대한 대답을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는데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성실하고 꾸준히 오래 하면 당연히 대박 나죠. 자주 먹으러 올게요 사장님.' 내가 뭐라고 성실이고 나발이고 가르쳤나 싶다. 그 순간 '대박'이란 말에 꽂혔던 탓에 툭 튀어나온 말이지만, 후회했다. 성실과 꾸준함, 버티는 힘과 내면을 단단하게 굳히는 일은 그 누구의 조언이나 잔소리, 의견 따위가 아닌 스스로가 알아야 하는 거니까. 나는 선을 넘었던 게 분명하다. 혼자만의 생각이었으나 툭 튀어나왔고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어서 그저 민망한 미소만 남긴 채 김밥을 포장한 봉지를 들고 가게를 나왔다.


내 주변엔 대박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괜찮아 보이는 나'를 추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말하는 대박은 무엇일까. 어떤 게 괜찮아 보이는 모습인 걸까. 조금 더 김밥을 많이 팔면 조금 더 편리한 삶이 되는 걸까. 전 세계가 김밥으로 열광하는 그날엔 우리 삶에 부족함은 모두 사라지고 만족함만 남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강아지와 함께 사는 삶을 꿈꿨던 사장님은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김밥을 만드셨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고 대박을 꿈꿀 틈도 없었다. 하지만 성실함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소박한 꿈과 함께 거리에 떠도는 동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됐고, 김밥 한 줄 먹을 돈이 없어서 겨우 한 줄로 하루를 버티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는 사장님이 20년이란 세월을 한결같이 김밥을 말았기에 보이는 일들이다. 그걸 하루아침에 대박으로 얻겠다니 불가능한 일이다. 나무는 뿌리를 내린 만큼 가지가 뻗고, 커피는 농도가 진해지는 만큼 기억에 남는다. 눈에 보이는 가지와 겉으로 보이는 크레마로는 나무와 커피의 본질을 모두 알 수 없다. 대박과 '괜찮아 보이는 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결론이 아니다. 얼마나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 또는 얼마나 진한 농도가 되어가고 있느냐 하는 삶의 과정을 매일 새롭게 추구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대단한 일, 박수받을 일. 대박이라 여긴다.


쓰는 사람은 읽어야 한다. 잊을 수 없는 김밥을 위해선 오랜 세월 김밥을 말아야 한다. 나는 새롭게 오픈한 김밥집 사장님의 건승을 빈다. 더불어 매일 포기하지 않고 김밥을 눈물로 말기를 바란다. 매일 먹었던 김밥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한 채 만난 나의 새로운 인연. 그가 여기서 진정한 대박을 마주하길 바란다. 언젠가 사장님의 인내를 느낀다면 견디고 버티며 쓰는 나의 이야기들도 끝내 세상에 필요한 글이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소위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실전을 위한 연습 방법은 조금 특이합니다.

갑작스러운 순간에도 연습한 대로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몸이 기억하도록 무한반복을 하는 건데요.

연습에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무한반복이 유일하고, 탁월한 방법이죠. 

배우는 대사를 몸으로 익히고, 요리사는 감각으로 요리하며 

운동선수는 공이 손을 떠난 순간 어디로 갈지 예측하는 것이

모두 무한반복의 결과입니다. 

삶은 언제나 연습과 실전이 동시에 이뤄지죠.

각자의 삶에 모두가 주어진 일들을 ‘무한반복’하며 

실전을 해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저마다의 노하우가 있는 베테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베테랑.

오늘도 우리의 빛나는 무한반복을 실현하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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