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사의 뒷모습
진선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뽑는 대회 미스코리아.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매년 공영방송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중계했다. 이 대회는 오늘날 수많은 문제를 대면한 후, 더 이상 공영방송에서는 볼 수 없게 됐고 언제 어디에서 대회가 있었는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대회가 됐다. 모든 현상은 그 현상을 구성하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 고민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미스코리아에서 내세웠던 '아름다움'이란 단어에 대한 의미, 그 본질에 대한 연구가 사회적으로 본격화되면서 이 대회도 문제가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대회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나는 미스코리아 진선미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 세계대회에서 수상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아직도 이 대회가 존재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 대회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있는 듯 보이지만 한때는 이 대회를 아주 흥미롭게 대했다.
여성으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에 미스코리아에 나가야지, 또는 미스코리아가 되어야지 뭐 이런 말들을 하고 들었는데. 내가 예쁜 아이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여자아이들에게 하는 어른들의 두서없는 칭찬은 대부분 미스코리아를 가져와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린 날의 나는 그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적어도 미스코리아에는 나가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는 건가. 적어도 그런 외모는 가지고 있어야 괜찮은 여자로 사는 건가, 이런 생각.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와 어른들의 빈 깡통 같은 부추김 때문이었을까. 나는 나의 자아가 형성될 무렵 나는 소위 장래희망이라고 불리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었다. 어른이 되면 지성과 미모,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영성이란 것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중학교 시절 내가 썼던 노트의 제일 앞장엔 언제나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성과 미모, 그리고 영성.'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나는 방송일을 시작했다. 대학교 3학년이 됐을 무렵 방송국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인턴을 시작으로 10년 이상 방송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지성인은 물론이고 한눈에 봐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출중한 미모의 소유자도 있었다. 평소엔 온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는 한 번 대화를 시작하면 알 수 없는 매력으로 상대방의 고민과 현재의 생각까지 모두 말해버리게 하는 영성의 소유자였다. 나는 그들을 통해 지성과 미모, 그리고 영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로 일상을 살아야 하는지 배웠고 그들은 어떤 말투인지를 관찰했다. 그러다가 나와 유독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의 사소한 물건을 따라 사기도 했다. (한 번은 방송국에서 만난 지성과 미모, 영성을 갖춘 아나운서 언니가 있었는데 나는 그녀와 닮고 싶어서 아나운서를 준비하다가 여러모로 큰 코를 다친 적이 있다.) 누군가를 닮아가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내가 아닌 나의 자아를 형성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최근까지도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그렇게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늘 바른생활을 했던 아버지로부터, 언제나 똑소리 나는 말을 했던 어머니로부터, 모든 것을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갈 줄 아는 동생으로부터였다. 생활을 함께하는 가족이란 나의 습관과 일상을 모두 공유하고 있어서 그 자체로 특별하고 애틋하지만 그렇기에 당연하다. 개인은 가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서 있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어떤 의지도 없이 홀로 서 있기란 역시 불가능하다. 개인이 온전한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과의 적당한 분리에 집중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지성과 미모, 그리고 영성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어떤 내가 되고 싶은가, 어떤 모습이 과연 나 인가. '나'라는 사람을 떠올렸을 때 어떤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가 하는 문제를 알아차림으로부터 진짜 내가 시작이었다.
그 문제는 가족을 포함한 타인에게서는 결코 출발할 수 없다. 온전히 나를 이해하는 과정은 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사는 세상은 나의 세상을 나로부터 출발할 수 있도록 돕지 않는다. 스스로, 억지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수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고 방황하게 하며 상처 위에 상처로 피를 흘리게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인생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인생의 일련의 과정을 잘 극복한 후에 내 몸과 마음에 있는 생채기들을 돌아볼 때쯤 생각한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인정을 제외한 채로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아니 에르노는 작품에서 자주 어머니를 언급한다. 세상을 알려주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린다. 아픔이 있을 땐, '단순 피로야' (아니 에르노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정혜용 옮김, 민음사)라고 축소해 버리거나 그로 인해 '이제 나의 건강은 어머니와 나 사이의 일'로 규정해 버린다. 결국 그녀는 그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결론짓고 '내겐 아무 얘기도 안 해주는 존재'들의 분노와 갈등을 있는 그대로 글에 남긴다. 자신을 보호해 주는 존재가 자신을 잃어버리게 했던 존재임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나를 찾는' 여정은 그 발견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지성과 미모, 그리고 영성은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과도 같았다.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시작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작은 사회인 나의 가족.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세상, 내가 만난 사회적인 규칙들과 암묵적인 태도는 그 단어들에게 언제나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사회의 한 일원이 되어서도 다음 달 카드값을 벌어야 하거나 새로운 누군가에게 늘 인정을 받아야 하는 삶은 '내가 누구인지'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내 인생에 대한 온전한 가치를 위한 생각은 공상이었으며 허상일 때가 더 많았다. 사람과의 관계와 세상의 굴레, 경제성의 원리와 다양한 가치관들의 충돌은 나를 찾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이 아닌 그저 사회를 이해하고 단순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소소함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결혼은 나를 찾아가는 전환점과 같았다. 비로소 내가 원하는 선택, 내 인생에서 필요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나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었던 전환점이었다. 내 능력이나 사회적인 위치, 지성의 정도 미모의 척도, 영성의 유무가 아닌. 나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여기며 가장 나와 잘 어울리는 내 삶의 하나의 흐름이라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지인들에게 나의 결혼 소식을 알리며 많은 축하를 받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가 있다. '그래 잘됐네, 그렇게 사는 거야.' 이제 막 은퇴를 앞두고 있었던 당시 내가 일하고 있었던 방송국 국장님의 메시지였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일상 속에서 가끔 그의 축하 메시지가 생각난다. 그 한 문장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 시작한 지성을 위한 노력과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과 같은 미모, 무엇인가 조금 더 특별해지고 싶은 영성을 위한 나의 욕심을 내려놓게 하기 때문이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사는 게 괜찮은 나. 이제야 비로소 나의 질서를 찾는다. 놀랍고 이상한 것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인정'을 위해 쫓아갔던 이전의 삶도 오늘의 나를 위해 필요했던 과정이었음을 알아차린다. 모든 것이 나의 삶이다.
어느 여행 크리에이터가 사막을 지나다가 길을 잃었어요.
현지인에게 전화를 했지만
사방이 모래뿐인 이곳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현지인은 전화를 끊은 뒤 몇 시간 후 그에게 도착합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길을 찾은 현지인이 신기해서 박수를 쳤죠.
사막에 사는 유목민들은요,
모래뿐인 땅에서 길을 찾아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바람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사막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는 거죠.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는지만 알고 있어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대답한 유목민에게서
우리는 삶의 지혜를 얻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지금 어떻게,
왜 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앞으로 우리 삶이 가야 할 길이 어딘지
조금 더 명확하게 알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