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내가 그린 자화상은 여러모로 별로였지만 다시 그릴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냥 눈 딱 감고 전시한 뒤 뻔뻔하게 웃기로 했다. 그러던 중 우리 어반스케쳐스 엘린체리 님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을 봤다. 자화상이라 적혀 있지 않았고 똑같지도 않았지만 체리 님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개성 있는 캐리커처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나는 체리 님에게 부탁했다. 나도 좀 그려달라고. 체리 님은 선뜻 사진 몇 장 보내봐요, 했다.
가만히 따져보면 초상화는 정말 어려운 장르다. 우리 조상들은 초상화를 그릴 때 터럭 한 오라기도 달리 그리면 아니 된다 일렀다. 인물의 외면뿐 아니라 정신세계까지 오롯이 담으라고 했다. 하지만 노화의 흔적이나 흉터처럼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 적나라하게 표현된 그림에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수긍하면 다행인데 괜히 작가를 탓할 수도 있다. 개인의 특징을 포착해 과장하는 다소 장난스러운 그림인 캐리커처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개성이 뽐내고 싶은 부분으로만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엘린체리 님이 부담 없이 그려보겠다고 했던 게 생각난다. 그러나 가볍게 시작했더라도 안 닮으면 어쩌지? 좋아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흔쾌히 그려준 엘린체리 님께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