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이라는 카페에서 정기 모임을 했다. 공교롭게도 가져간 샤프펜슬에 심이 없었다. 연필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누구에게든 빌려서 쓸까 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물감으로 색 먼저 가볍게 올린 다음 직접 펜으로 스케치해 봐도 좋을 듯했다. 온라인에서 그렇게 그리는 작가를 보고 나도 한번 해 볼까, 했을 뿐 아직 시도하지 않았는데 마침 잘 되었다.
색을 넓게 올린 뒤 펜 선을 넣고 나중에 일부 추가 채색만 했더니 작업이 빨랐다. 그림 한 장 더 그릴 여유까지 생겼다. 작은 그림은 펜으로 스케치한 다음 색을 올렸다. 엉성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았다. 앞으로도 종종 연필 없이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임에는 정통 수채화를 그리는 분도 몇몇 있다. 그중 한 분이 이번 주말부터 개인전을 한다며 도록을 보여줬다.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 정겹고 보기에 좋았다. 뒷면의 프로필을 보니 전시회 경력도, 수상 경력도 빼곡하다. 그런 분이건만 어반 스케치는 어렵다고 했다. 정성을 쏟아가며 꼼꼼하게 그리던 분이 설렁설렁 그리려면 아무래도 어색하고 성에 차지 않아서일 듯했다.
며칠 전 내가 초청장 문구로 끙끙거렸던 게 생각났다. 몇 줄 되지 않을지라도 우리 전시회의 첫인상이 될 수도 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초안은 금방 썼지만 고치고 또 고쳐도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결국 디자이너 지나 님에게 최종본을 보내는 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이제 조만간 디자인이 완성되면 인쇄된 초청장이 사람들의 손으로 전달될 것이다. 그때 나는 다시금 읽어보며 이 부분도 좀 고칠걸, 하는 마음에 입꼬리가 처질지도 모른다.
나는 그림 그릴 때 겁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면 어렵고 쉽고를 따지지 않는다. 무턱대고 시작하고 못 그렸어도 배시시 웃고 만다. 반면 몇 줄 문구에서는 자꾸만 머뭇거렸다. 내가 이걸 왜 덥석 맡았지? 하며 깊은 한숨도 내쉬었다. 차이는 아무래도 ‘이왕이면 제대로 하고 싶다’와 ‘그저 즐기지요’ 중 어디로 더 마음이 기울었는지에서 오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내가 그린’을 찾아가면서 그림을 그리다, 그리워하다, 정도의 의미를 상상했다. 과연 카페에는 주인이 그린 그림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카페 내부를 둘러보던 나는 살짝 놀랐다. 영어로 적힌 문구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거였다. I’m Green Cafe.
아마 카페 이름이 I’m green이라는 뜻일 테고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겠지만, 붓질하는 와중에 내 머릿속에는 ‘나는 그린’과 ‘내가 그린’은 엄연히 다르다는 생각이 스쳤다.
예: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그린(이야) / 이 중에 누가 그린이야? 내가 그린(이야).
영어로 답한다면 나는 그린은 green에, 내가 그린은 I’m에 악센트가 있겠지. 그러고 보니 ‘내가 그린’에 조금 더 당찬 느낌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야 나, 내가 바로 그린이라고.
감성적 간판을 보며 나는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걸까. 혹시 ‘T발놈’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