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고구마 농사였다. 시부모님 지인의 밭인데, 고구마가 참 잘 자라는 땅이라는 말에 시부모님이 냉큼 지어보겠노라 하신 거였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 두 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어놓고 힘들어하셨다. 고향이 아닌 곳에 정착한 자식들은 제때 도울 수도 없으니 그만하시라 당부했고, 결국 몇 년간 농사를 짓지 않으셨다. 이번에는 진짜로, 소일 삼아 조금만 짓겠노라 강조하셨다. 자식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고구마 수확할 때가 되어 자식들은 밭으로 호출되었다. 작업용 방석을 바짓가랑이에 끼우려니 바지 위에 팬티 입는 기분이 들어 살짝 민망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목장갑도 꼈다. 남자들이 낫으로 무성한 고구마 줄기부터 잘라내고 씌워놨던 검은 비닐도 제거했다. 줄기를 힘껏 당기자 실한 고구마가 줄줄이 딸려 나왔다, 이렇게 쓰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고구마는 깊이 박혀 있었다. 더군다나 흙이 단단해서 호미와 세 발 괭이로 내리치며 파헤쳐야 했다.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야 구황작물이지, 아무렴. 어쨌든 그 와중에 자꾸만 고구마가 찍혔다. 거의 나온 듯해 흔들며 당기다가 부러지고, 꿈쩍도 하지 않는 고구마 근처를 호미질하다가 깨뜨리기도 했다.
살살 파보기로 전략을 바꿨다. 고구마 여럿이 땅에 박힌 채 머리 내지는 상반신만 드러낸 모양새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좀 누워 있지 어쩌자고 다들 서 있냐. 땅을 향해 자란 게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잠시 허리를 편 뒤 내려다보았다. 고구마 무더기의 모양새가 거석 유물의 축소판인 양 보였다. 영국의 고대 유물 스톤헨지나 스코틀랜드 컬러니시 거석 같은. 그때였다. 내 옆에서 작업하던 시누가 한마디 했다. 언니, 꼭 유물 캐는 사람 같아요. 나는 머릿속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머쓱했다. 상처 난 고구마를 옆으로 던져놓으며 답했다. 아유, 유물 발굴단이었으면 진즉 쫓겨났죠.
우리는 하도 깨진 게 많아서 몽땅 고구마 맛탕을 만들어야겠다는 둥, 농사를 지으려거든 차라리 대규모로 해서 포크레인을 동원하는 게 낫겠다는 둥, 이렇게 흠집이 많은 건 하나하나 직접 캔 수제 고구마라는 증거니까 팔게 되면 비싸게 팔아야 한다는 둥,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수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발코니 그늘 쪽에 신문지를 깐 뒤 흙투성이 고구마를 죽 늘어놓았다. 나흘쯤 그렇게 말려야 고구마 저장성이 좋아지고 더 맛있어진다고 했다. 고구마는 크기가 들쭉날쭉했다. 그중 커다란 녀석을 보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먹을 때는 주먹 크기보다 살짝 작은 게 좋으면서 큰 걸 쑥 꺼낼 때 월척이라도 낚은 양 뿌듯했던 게 생각났다. 다른 고구마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똥처럼 길쭉한 녀석부터 허리가 굽은 녀석, 배가 불룩한 녀석, 위풍당당한 녀석도 있었다. 설핏 몇 개는 두더지처럼 보여서 내가 녀석들을 두고 수제니 어쩌니 지껄였던 게 미안하기도 했다.
가을 초입, 우리 집 발코니에는 내 손길이 닿은 옥수수와 고구마가 그득하다.